아치울잡초 2007. 7. 3. 17:56

 

발등에 오줌 쌀 만큼 바쁜 망종(芒種)

 

24절기의 아홉 번째로 양력 6월 6~7일 무렵이 된다.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해의 황도가 75도일 때이다.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芒)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때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역시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개똥지바뀌 등 지빠귓과에 딸린 새)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보리 베기와 모내기를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속담에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오."라는 속담이 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도 있는데 망종을 넘기면 보릿대가 꺾어지거나 부러지고 바람에도 넘어 갈 염려가 있으며,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야만 논에 벼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 만큼 1년 중 제일 바쁜 때였다.

 
전남지방에서는 망종날을 '보리 그스름'이라 하는데 아직 남아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그스름을 해먹으면 이듬해 보리농사가 잘 되어 곡물이 잘 여물며 그 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이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었다.

 
망종이 빠른 날짜에 오는지 늦게 오는지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데 이를 '망종보기'라 한다.

전남, 충남,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 해 농사가 시원치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경남 섬 지방에서는 망종이 늦게 들어도 빨리 들어도 안 좋으며 가운데에 들어야 시절이 좋다고 믿었다.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만든 뒤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보릿가루로 죽을 끓여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였다고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망종이 일찍 들면 그 해 보리가 좋고 늦게 들면 보리가 좋지 않다고 하며, 또 이날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했다.

 
이때쯤부터 들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지만 오랜 가뭄으로 엄두를 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예전에는 기우제를 어떻게 지냈을까?

 
옛 사람들은 이름난 산의 봉우리나 큰 냇가 등에 제단을 만들어 신성한 땅으로 정하여 부정한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는 등 깨끗이 하고, 마을 공동 행사로 제사를 지냈다.

제주(祭主)는 마을의 어른이나 지방관청의 우두머리가 맡았고, 돼지 ·닭 ·술 ·과실 ·떡 ·밥 ·포 등을 제물로 올렸다.

 
민간의 풍습에서는 피를 뿌려 더럽혀 놓으면 그것을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는 생각으로 개를 잡아 그 피를 산봉리에 뿌려 놓기도 했다고 한다.

충청북도 중원군 엄정면 목계리는 이장이 제관이 되어 한강물줄기의 웅덩이 속에 있는 용바위에서 소를 잡아 용바위에 피를 칠하고 소머리만 웅덩이 속에 넣는다.

이때 흔히 키로 물을 까불어서 비가 내리는 것 같은 형태를 만드는 주술적인 동작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가뭄이 심할 때 왕이 직접 백관을 거느리고 남교에 나와 기우제를 올렸는데, 일반에서는 시장을 옮기고, 부채질을 하거나 양산을 받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양반도 관(冠)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기우제의 대상이 되는 신은 천신(天神), 지기(地祇:땅의 신), 명산대천신(名山大天神:큰산의 신), 풍운뢰우신(風雲雷雨神:바람, 구름, 번개, 비의 신), 서낭신(땅과 마을을 지키는 신), 토지신, 산신, 마을귀신, 용신(龍神), 수신(水神: 물의 신) 등이다.

 
중요한 것은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하늘의 벌을 받은 것이라 하여 임금 스스로가 몸을 정결히 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물론 음식을 전폐하였다.

또 궁궐에서 초가로 옮겨 거처를 하였으며, 죄인을 석방하기도 했다. 현대의 정치에서도 미신을 믿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철학으로 나라를 운영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