炳燭之明 아름답게 늙는법
부처라 할지라도 나이를 먹습니다.
하물며 보통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어차피 나이를 먹는 것이라면,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아름답게 늙고 싶습니다.
봄날의 벚꽃도 아름답지만, 가을의 낙엽도 맛이 있습니다.
나이는 먹지만 늙지 않고,
하루하루 앞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
그런 삶의 방식을 한문에서는 “炳燭之明(병촉지명)”라 합니다.
인생의 미묘한 그림자는
아침이나 대낮의 눈부신 빛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녁 무렵 등불로 비추어야 비로소 보입니다.
실제로 인생론에 관한 명저의 대부분은
저자들이 만년에 쓴 것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병촉지명”은 아침 해보다 밝다 할 것입니다.
< “한문의 생활력” ‘늙는다는 것’에서>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만일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하고 생각한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만약 A고교가 아닌 B고교에 들어갔더라면?
만약 A사가 아닌 B사에 취직했더라면?
혹은 A양이 아닌 B양과 결혼했더라면?……
사람이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갖는 것은 어릴 때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꿈과 가능성을 줄여가는 것입니다.
이를 한문에서는 “墨子悲絲, 楊朱泣岐(묵자비사, 양주읍기)”
라고 합니다 .
< “한문의 생활력” ‘교양교육과 전문교육’에서>
“墨子悲絲, 楊朱泣岐(묵자비사, 양주읍기)”
'양주'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 길을 보고 울었다. 그것은 그 길에서는 남쪽으로도 갈 수 있고 북쪽으로도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모르는 사람은 방향을 잃어 잘못된 쪽으로 갈 수 있다. 여러 가지 설을 세웠기 때문에 사람이 이것을 잘못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으로 빠진다. 검은 색으로도 물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하게도 악하게도 되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결국에는 완전히 다르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와 마찬 가지로 사람이 나아가는 길은 다만 하나 뿐인데도
'묵적'은 하얀 비단을 보고 울었다.
그것은 하얀 비단실은 노란 색으로 물들일 수 있고,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성품은 습관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되기 때문이다.
한 번 변하면 다시는 원래 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후한시대의 고유는 이 글을 보고 다음과 같이 설명 했다.
" 원래 사람의 근본은 한 가지이다.
사람의 천성은 선하며 모두 같지만 교육이나 사귀는 친구에 따라서
이것을 불쌍히 여기면 슬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