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虛作談論

닮는다는 것

아치울잡초 2008. 5. 4. 08:53

 

우리는 예로부터 부모를 닮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디 보자! 누굴 닮았나?”

“그 애비에 그 아들”, “그 놈 참 지 애비 꼭 빼 닮았네!”

이웃에 산다는 정감의 표현으로 이렇게 덕담을 하고

이것은 아이에 대한 최대의 칭찬이었다.


이런 글도 있었다.

不肖子孫 辱之先祖(불초자손 욕지선조)

“부모를 닮지 못하면 선조에 욕이 된다.”


그리고 부모를 따라가지 못하면 효도가 아니라고도 했다.

論語에서

子曰 父在觀其志요 父沒觀其行이니

三年無改 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자왈, 부재관기지 부몰관기행 삼년무개어부지도 가위효의)

 

“공자께서 이르시기를 부모가 살아 계실 적에는 그 뜻을 살피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행적을 기려서 적어도 3년 동안 따라 해야

부모에 대한 도리요 효자라 할 수 있다.” 

3년 시묘는 여기에 연유된다


옛적 우리 선조들은 자식들에게 그리도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셨나 보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칠십이 종심소욕 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시되 칠십이란 나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대로 따라하더라도 법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

즉, 70이 되면 뜻대로 행하여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절제되어 있었던가를 잘 말해준다 여겨진다.

 

그런 연유에서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우리 부모님들께서도

또 자신들의 부모를 닮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면서

“불초소생”, “불초소생”을 넋두리로 하며 노랫가락을 만들어

부르시지 아니하였던가?


우리들의 아내는 자식들의 하는 짓을 보며 가끔 이렇게 얘기한다.

“너는 어째서 하는 짓이 네 애비와 똑같니?”

대개 칭찬의 의미가 아니라 불만스런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다.

요즘 세태에서는 우리 자신들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너는 자라서 네 애비는 닮지 마라!”

그러나 연세가 드셔서 세상물정 훤하신 우리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놈 참 지 애비 닮았네!”

“애비만한 자식이 있냐?”


우리 선조님들,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짓고 종묘와 사직을 세운다.

왕은 하루의 시작을 조상을 모신 종묘를 찾는 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원한다.

“조상님들 제가 오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사직단에 가서는 또 이렇게 기원한다.

“이 나라가 적들로부터 위태롭지 않도록 하여주시고

백성들 농사가 잘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宗廟 社稷에 관한 요즈음의 설명을 옮겨본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대신들이 임금에게 종묘사직을 보존해 달라며

상소를 올리는 모습을 곧잘 보게 되곤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종묘사직이란 종묘는 창경궁 옆 종로구 훈정동에 있는 종묘이며

사직은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단을 의미한다.

종묘는 비교적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종로에 있어서인지 많이들 알고 있지만

사직단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종로에 비해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까닭일게다.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이며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도 의식을 행하였다.

몇 년 전 크게 유행했던 드라마 '용의 눈물' 마지막회에서

태종 이방원(유동근분)이 오랜 가뭄 끝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 바로 사직단이었다.

사직단은 굳게 잠겨있으나 일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공원은 일제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면적을 축소하여 공원으로 꾸몄으며,

1940년에 정식 도시공원으로 삼았다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역사의 현장에는 아프지 않은 상처가 한군데도 남아있지 않은듯 하여

답답해지기도 하다.

사실 사직단은 지극히 평범하다.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어 들어가 볼 수도 없거니와

잔디와 조그마한 제단이 전부일 뿐이다.

공원을 위해 사직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직단이 있기에 공원이 있는 것인지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니 역사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크다.

사직단의 의미와 유래를 아는 사람은 역사의 현장을 찾았음에 감격해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 감흥 없이 지나치고 말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