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虛作談論

신애가 취직하던 날

아치울잡초 2010. 2. 2. 16:20

 

 

 

 

 

입춘을 앞두고 집안에 경사가 났다.

지난 1년간 30~40군데 입사원서를 내고 시험치고 면접보고 반복하던 딸내미가 마침내 취직이 되었다.

회사명 “000 선박금융 주식회사” 광화문에 있는 선박관련 펀드운용회사란다.

단 한명의 “펀드운용”인력이 필요해서 사원을 모집했고 용케도 신애가 채용되었다.

 

나름대로 신애는 그동안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었다.

“토익 950점, 금융관련 자격증 소지”

내가 보기에 이 두 가지 요인이 채용근거로 작용된 것 같았다.

 

2010년 2월 1일, 첫 출근한 신애에게 전화를 했다.

“별일 없냐? 잘 적응하니? 주변에서 잘 해주냐?”

“출근 첫날 특별히 맡겨진 일도 없고 뻘쭘하니 시간 보내기가 좀 그래?

아빠,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이따가 저녁에 집에 가서 자세히 얘기해 줄께?”

조심스레 전화를 받는다.

아마도 사무실에서 나와서 복도에서 통화하는 듯,

 

“어디에 입사원서 냈느냐? 잘 되어 가냐?”

불쑥불쑥 질문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일었지만 지난 1년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꾹 참았다.

집에서 한가한 시간, 아내와 거실에 앉아 있을 때에도 신애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입사준비나 제대로 하는 것인지는 도시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애가 당찬 구석이 있어서 한번 마음먹은 일은 어쨌든 하고 마는 고집불통이라는 점, 그리고 한번 책상머리 앉으면 몇 시간이 되었던 집중하며 공부하던 집념과 끈기를 보여 주어왔던 터라 기다려 주면 언젠가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고 말거라는 믿음도 함께 있던 터였다.

 

한번은 오래간만에 소파에 나란히 있게 되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요즘 어디 입사원서 내고 있냐?”

“응! 대홍기획에 지원서 냈는데 떨어졌어,

여자애들을 얼마 뽑지 않으니까 무척 경쟁이 심한 거 같아?”

“야, 임마! 대홍기획 사장님을 내가 잘 아는데 미리 얘기를 좀 하지 그랬어?”

“그래? 난 아빠가 그런지 몰랐지 뭐”

실상 대홍기획 사장님께 얘기한다고 해서 딱히 떨어질 녀석이 붙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좀 폼을 잡으려고 한마디 했었다.

얼마 후 우연찮게도 모 예식장 하객으로 가서 대홍기획 사장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었다.

신변잡사 거론타가 자식안부 묻게 되었는데 생각이 나서 신애 얘기를 꺼냈었다.

“내 딸 놈이 사장님 계신 대홍기획에 입사원서 냈다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경쟁이 심하다던데요?” 했더니

 

“아! 그런 일이 있었으면 미리 얘기나 좀 하시지 그랬어요?”

“아! 글쎄 그 녀석이 일 다 끝내놓고 얘기를 합디다.”

신애 성격이 이러니 더 물어볼 생각은 자연스레 접어 두기로 했었다.

그런데 신애가 마침내 일을 낸 것이다.

 

저녁에 신애에게 들어보니 정말 좋은 회사이고 신애에게 너무나 잘 맞는 회사란다.

영어를 잘하고 펀드 운용 같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인쿠르트”들렀다가 채용 정보가 있어서 채용 되었는데 “딱 !” 이라고 한다

신애뿐이 아니라 우리가족에겐 너무나 큰 축복 !

- 대한민국에 아직 4개뿐인 선박금융회사중 하나

- 싱가포르주재원이 상주하고 있어서 계속 영어로 회의 를 하게 되는데 신애 적성에 딱 맞는 일

- 신애가 가지고 있는 금융자격증을 써먹기 좋은 펀드부서 배치

- 신입사원으로 3000만원에 육박하는 고액연봉계약

-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사무실

- 직원 중 제일 좋은 컴퓨터 지급

- 좋은 복지제도와 더불어 일 끝나면 칼 퇴근(?)

- 가장 중요한 일은 비서빼고는 20명 직원중 홍일점

퇴근하려는데 팀장이 뒤에서 “내일도 나올거지?”라고 했단다.

벌써 다른데 갈까봐(?) 걱정하는 말투로 들려 신애가 자신의 몸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란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던 마누라는 신애 때문에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고 한다.

바로 며칠 전, 엄마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더니 “신애는 취직했어?”라고 묻더란다.

자존심 상했지만 “아직~ ”했더니 “우리애는 이번에 삼성전자 들어갔어” 하더란다.

자식 취직한 거 자랑하려고 전화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축하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전화 받는 내내 영 기분이 찝찝했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조심스레 신애 취직을 물어오는 일에 대답하는 일이 아주 곤혹스러웠다는 아내였다.

 

생각해보면 직장 좋고, 자기하고 싶은 일 하고......

신애가 그렇게도 원하던 은행, 증권회사보다 신애에게는 오히려 훨씬 좋은 직장이라고 여겨진다.

이리도 좋은 직장 들어가려고 그렇게 뜸을 들였나 싶다.

싱글벙글 신애, 곁에서 아내는 그래도 걱정스런 훈수,

“나올 때 상사에게 인사했냐?”

“누구하고 점심 먹었느냐? 밥값은 누가 냈냐?”

“시키는 일 눈치 빠르게 잘했냐?”

“주위 사람들이 잘해주더냐?”

“뭐 좀 알겠더냐?”, “멋진 총각 놈은 있더냐?”

“아침에 시간 걸리니 머리는 저녁에 미리 감고 아침엔 세수만 해라.”

“일찍 자고 일찍 출근해라.”

“옷차림 단정하게 해라.”

“오래 앉아 있게 되면 슬리퍼가 필요하니 가져가라.”

“치솔도 챙기고 가글도 꼭 자주해라.”

 

친구들 앞에서 자랑 늘어질 마누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그래 힘든 취직했으니 그리고 멋진 딸내미가 멋진회사 들어갔으니 실컷 자랑해라"

모처럼 사람 사는 것 같이 저녁 내내 가정이 즐거웠다.

 

마누라에게는 곁에서 부러워하는 아들놈 입장을 생각해서 이제 신애는 적당히 치켜세우라고 당부하고

이번 주말에는 가족끼리 일식집에 가서 생선회에 소주나 한잔하면서

 “신애입사기념파티”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