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虛作談論

비우지 못하는 마음

아치울잡초 2010. 7. 15. 10:12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텅 빈 공간이 있어 그릇의 쓸모가 있게 된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가서 짐정리를 하게 되면 일주일은 짧고 대충 한달 정도는 경과되어야 물건 제 위치 찾아주기를 끝낼 수 있다.

장롱에 옷가지를 정리하고 벽에다 사진이나 그림을 걸고 서가에 책을 정리하고 신발장이며, 베란다 수납장, 싱크대 등을 정리하다 보면 통상 한 달은 후딱 지나가게 된다.

 

벽에 붙이고 안에 집어넣고 차곡차곡 쌓아놓고 가지런히 정리하다 보면 이사하면서 상당부분 버리고 왔는데도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끌고 온 것이 참으로 많구나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 좁은 공간에 뭐 그리 많은 물건들이 들어가 있었는지 .......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뿐이고 이내 또 새로 이사한 집에서도 거실 한 켠에 빈 공간만 보이면 장식장을 사다 놓고 싶고 벽에도 빈곳에는 자꾸 무언가를 걸어서 채우려고 안달이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 비우지 못하는 마음

채우고 또 채우면서 그래서 늘 허기지고 갈증이 나고 그렇게 살아간다.

 

집이 비어 있고 들어갈 공간이 있어야 비로써 제 기능 발휘할 터인데 그런 생각 못하고 채워 놓기에 바쁘다.

집안이 너무 채워져 있어 넓은 집을 옹색하게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아파트가 몇 평이냐 집값이 비싼 동네냐 만을 신경 쓸 뿐 그 집이 비어 있고 들어갈 공간이 있어야 비로써 제 기능을 다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산다.

짐에 치여서 옹색하게........

 

언젠가 TV프로에 어느 연예인의 가정생활 모습이 소개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거실, 사진틀 하나 걸려있지 않은 벽면,

반쯤 비어있는 냉장고,

걸려있는 옷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헐렁한 옷장, 

연예인의 집이라 뭐 좀 신통한 것이 없나 했더니 좋아 보이는 물건은 커녕 눈에 띄는 물건이라곤 아예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 집은 너무 다른 모습으로 소개되었었다. 

우선 집은 널찍하고 드레스룸에는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안팎으로 놓여있는 냉장고 문을 열면 온갖 먹거리가 넘쳐났고 거실에는 미술품에다 유명화가의 그림에다 온갖 장신구, 보석, 귀금속 등 집안 구석구석 사치스러움과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모습을 흔히 보아왔던 터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채우기 보다는 비우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

허허로운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그 연예인, 상당한 내공의 힘이 느껴졌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이보다 훨씬 엄청난 분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아내가 이따금 만나고 와서 존경스럽다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어느 여인의 일상사는 거의 수도승과 같은 생활이라 해도 충분하다.

지금 세상에 이렇게 살아가는 분도 있다.

 

    그 존경스런 여인의 원칙

 

   - 세수하고 머리 다듬고 옷을 단정하게 입고 아침상 차린다.

   - 남편 출근할 때 불편한 이야기 않으며 현관 밖까지 배웅한다.

      잘 다녀오시라 남편 엉덩이를 몇 번 쳐주며 기분 좋게 한다.

   - 사업을 하는 남편의 옷은 세탁기에 넣지 않고 손빨래로 한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옷이 엉키듯 남편 사업도 엉키게 되므로

   - 옷장이 숨쉬도록 옷 한 벌 사면 묵은 옷 한 벌 반드시 버린다.

   - 냉장고, 장롱등 모든 수납공간을 절반 이상은 반드시 비워둔다.

   -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일단 과감히 버린다.

   - 거실을 매일 걸레질 하되 佛堂을 닦는다는 마음으로 닦는다.

   - 걸레는 행주보다 더 하얀 모습으로 유지한다.

   - 장롱, 싱크대 , 거실  등에서 물건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한다.

   - 모든 물건은 보이지 않도록 반드시 수납장 안에 들여놓는다.

   - 세면대, 욕조에는 물 한 방울 없이 항상 뽀송뽀송해야 한다.

 

불심(佛心)을 닦아가며 게으름을 경계하는 생활태도가 정말 존경스럽다.

 

나도 절반만이라도 닮고 싶어 내 집안의 많은 부분을 비우고 싶다.

 

   - 소파를 없애고 ‘소파 없는 거실’ 생활을 하고 싶다.

   - TV 주변에 장식장도 치워 버리고 싶다.

   - 굳이 필요 없는 장식장도 내다버리고 싶다.

 

하지만 전업주부 아내 앞에서  아직까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30년 속세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에 푹 빠져서 행복해 했던 도연명 “歸田園居”의 다음 구절처럼 나도 텅 빈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 戶庭無塵雜 虛室有餘閒 (호정무진잡 허실유여한) ”

“집안엔 시끄러운 일없고 텅 빈 방안 오히려 한가로울 뿐 ”

 

내 육신, 내 정신, 내 주위 공간들,

모두 텅 빈 공간으로 만들어 놓으면 또 무언가로 채울 수 있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