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울잡초 2012. 8. 21. 09:34

 

 

환갑이 넘도록 아침 여섯시에 밥상 받고 출근하는 나는

누가 뭐라해도 이 시대 운이 좋은 놈이다.

 

오장육부가 완전 토종이라 그런지

남들처럼 빵으로, 야채로 조식 간소화에 동참하지 못하고

죽으나 사나 밥에 뜨거운 국을 주문하지만

한 이불 덮고 지낸지 30년이 넘도록 아내는 불평 않고 잘 따라준다.

오늘도 나는 먹고 아내는 밥상머리(?) 옆에서 턱 괴고 앉아

물끄러미 먹는 모습 바라보고 있었다.

 

밥 잘 먹고 마지막으로 풋내 나는 오이고추를 한입 배어 물며 한마디 저절로 나왔다.

“싱싱한 고추가 제일 맛있구만~~”

아무 생각없이 고추 맛있다는 말이었는데 이 말이 아내를 빈정 상하게 했나보다.

“아니, 양념 잔뜩해서 만들어 놓은 호박나물이며 생선이며 가지나물이며

이런 것들은 맛이 없고 달랑 사다놓은 날고추가 제일 맛있다구?”

정성껏 양념해서 만든 반찬은 제껴놓고

그냥 사다 놓은 고추 제일 맛있다는 말이 몹시 서운하게 들렸나 보다.

 

급히 수습에 들어갔다,

“아니 다른 반찬은 물론 맛있고 날고추마저도 맛있다는 얘기지,

이른 아침인데도 내 입맛이 좋다는 얘기야“

다행히도 아내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젊고 바쁘게 살아갈 적에는 부부지간에 별다른 생각없이 하는 말도

다른 바쁜일과 생각에 묻혀서 아무 문제없이 잘 넘어갔었는데

이제 나이들고 여유가 생기니까 그런것인지 영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부부지간에 조차 너무 세심한 부분까지 연구하고

대화해야 한다면 이는 정말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어쩐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아내한테 이기면 뭐하냐? 차라리 알아서 지는 편이 낫다.’

오히려 매사 칭찬해주고 집안에서도 몸을 낮추는 도인의 생활이

‘가화만사성’을 이루는데 첩경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낮추는데에는 "도덕경 상선약수"가 으뜸이라 생각된다.

 

<도덕경 제8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고도 그 공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있으므로 거의 도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