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虛作談論

• 만물공경

아치울잡초 2012. 9. 11. 11:47

 

 

 

 

 

강의를 듣다가 알게 된 이야기이다.

 

대학도서관은 고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며

대개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게 되는데

그 학생들이 상식과목의 시험 준비를 위하여 아침이면 신문을 들고 와

스크랩 하는 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책상위에 신문지를 펴놓고 스크랩할 기사가 있는 부분에 자를 대고

날카로운 칼로 그어서 오려내게 되는데

밑에 있는 좋은 책상들이 그대로 칼로 그어져 상하게 되는데도

누구 한사람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스크랩만 하면 되지 도서관의 훌륭한 책상이 매일처럼 날카로운 칼로 베어지는 일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여기던 학생들이 참으로 이상하였다고 한다.

 

敬天, 敬人, 敬物 경천, 경인, 경물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공경하고 만물을 공경 하는 일,

 

미신적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敬人,

즉 인권에 대하여는 그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지만

만물을 공경해야 하는 敬物에 대하여는 너무나도 소홀하다는 느낌이다.

책상이라는 완성품으로 우리 앞에 놓여지면 敬物(경물)로 대하여

만물을 소중히 알아야 하는데 물건에 대하여 너무나도 함부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人權은 物權에 의하여 완성된다고 한다.

예전에 농부는 밭에서 삽을 가지고 일하다가

해가 떨어지면 그 삽을 들고 냇가로 가서 깨끗이 씻고

바람이 잘 통하는 담벼락에 세워놓아 충분히 말리고

다시 해가 뜨면 그 삽을 들고 밭으로 나갔다고 한다.

다음날 어차피 다시 일하러 올 것이며 일하던 삽을 밭 한쪽에 질러 놓았다가

다시 사용하면 훨씬 편했을 테지만

삽이라는 물건을 아끼는 마음에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인간이 욕심껏 맘대로 부숴버리고 다시 장만하고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깡그리 밀어버리고 다시 짓고 하는 일은

敬物이라는 취지에서 볼 때 너무나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天依人, 人依食, 萬事知 食一碗

천의인(天依人)하고 인의식(人依食)하니

만사지(萬事知)는 식일완(食一碗)이니라.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을 것에 의지하니

만사를 아는 일은 밥 한그릇의 이치를 아는 것과 같다.

 

쌀 한 톨은 자연의 힘으로 地氣(지기)를 모아 만든 걸작품으로

인간이 제아무리 과학의 힘을 이용하여 DNA를 합성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하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걸작품인 것이다.

자연의 힘이 들어있는 쌀 한 톨도 이토록 위대하니

세상만물 어이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敬物(경물),

천도교 삼경(三敬)중의 하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공경하는 일,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공경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