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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느 선생님의 퇴임사

아치울잡초 2012. 10. 5. 10:16

<!-by_daum->

 

어느 선생님의 퇴임사입니다.  요즘 교육에 많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념교육으로 우리의 안보를 걱정하고 있는 이때 어느 교사의 퇴임사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여 이곳에 옮겼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퇴임식날 만감이 교차하여 막상 하고 싶은 얘기를 못 할 것 같아
미리 메신저에 띄웠다는 글을 퍼왔습니다.

정작 퇴임식장에서는 "안녕히들 계십시오 그리고 좋은 선생님 되십시오!"
요 한마디 밖에 못했다는군요...

좀 깁니다... 그렇지만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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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금은 돌아갈 때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머물러 소중한 것들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내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성내고 내 뜻과 다르다고 화내고 이것은 본래 꿈꾸던 삶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중심에서 벗어나 가장자리를 맴도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서운한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 새싹에게 자리를 내어 주겠다던 초심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서운한 것은 무능함으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젊은 시절엔 아이들과 뒹굴며 교실에서 청춘을 보냈고, 경력자 위치에 선 시절엔 공문에 묻혀 뛰어다녔고, 원로가 된 시절부턴 뒤로 한발 물러서서 살았습니다.

누가 그만 두라고 해서 물러선 것이 아닙니다. 일이 싫어서 물러선 것은 더욱 아닙니다.
단지 젊은 새싹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뿐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에도 부합되고 보기 좋은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직장에서 한 가지 일에 일생을 바쳐 일 해왔다는 것을 자랑할 시대는 지났습니다.
오죽 무능하면 한 우물만 파고 살았냐고 조롱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30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철부지들과 싸우는 동안 세상은 너무나 변해버렸습니다.
군사부일체는 전설이 되었고 교직을 성직으로 여기던 교사들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졌고 교사직도 노동자라고 외치는 젊은 세대가 교직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바라고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가정에선 아버지 어머니의 권위가 살아있어야 가정교육이 반듯하게 이루어지듯이 학교에선 교장, 교감, 경험 많은 선배들의 권위가 살아있어야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교직풍토가 이루어집니다.
지도자를 잃은 나라가 잘 될 리 없고, 경영인이 없는 직장이 발전할 리 없고, 부모 없는 가정이 행복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평등은 무조건 횡적으로 한 줄로 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 많은 노인과 젊은이가 똑같이 짐을 지는 것은 평등이 아닙니다.
노력한 자와 노력하지 않은 자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도 평등이 아닙니다.
젊은 교사가 나이 많은 선배교사에게 시간을 양보함은 미덕입니다.
그래야 자신도 먼 훗날 기력이 쇠해졌을 때 후배들로부터 떳떳하게 양보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미덕이 쌓여 갈 때 선후배 교사 간에 믿음이 쌓여가고 밖으로부터 존경받는 교직사회가 될 것입니다.
남을 존경함은 곧 나 자신을 존경함입니다.

교육의 수요자이며 우리들에게 재원을 공급해주고 있는 학부모와 사회는 교사들의 평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평가 기준을 세워 효율적인 운영을 한다면 교사평가는 교육발전에 역기능이 아닌 순기능으로 작용 할 것입니다.

교직사회도 다양한 인간상이 모여 사는 집단입니다.
교직사회라고 해서 예외는 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으른 사람도 있고 솔선수범 앞장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이끄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이기적이고 차가운 교사도 있습니다.
수업을 함에 있어서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열정이 못 미치는 교사도 있습니다.

철 밥통 움켜쥐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 집단으로 내몰리기 전에 대안을 찾아 적응하는 것이 변화하는 사회에 발 맞춰 나가는 현명한 길이 될 것입니다.

자율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 높고 힘든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책임감도 의무감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에게 자율성과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자칫하면 교사의 직무태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책임과 의무를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진 자율이나 자유는 철모르는 아이에게 명검을 쥐어 준 것과 같습니다.
명검은 고도의 정신력과 수련을 쌓은 사람이 써야 명검으로서 빛이 나는 것입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휘두르는 명검은 위험한 철 덩어리에 불과 합니다.

교육은 반복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고된 직업입니다.
열 번 잔소리 하면 한 번 알아듣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선이 굵고 멋진 교사보다는 세밀하고 잔소리 많은 교사가 진정으로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이라는 것을 교직 경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념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사춘기에 접한 아이들의 겉모습은 성인처럼 보이지만 정신력은 매우 약하고 어리석습니다. 아직도 배우고 경험하고 연마해야할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지요. 이들을 불러 우리는 미성년이라고 합니다.

미성숙한 인간에게 특정한 이념을 불어넣을 때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론적인 체계나 당위성도 없이 그저 특정한 국가나 그룹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무조건 개혁해야할 상대로 여기고 적개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자아를 완성하기도 전에, 사회를 알기도 전에, 빨간 물이 들고 노랑물이 들어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누구도 그들의 생각을 한 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30년 역사교사로서 교단 위에 서는 동안 한 순간도 교과서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습니다.
무수한 학자, 전문가들이 모여 집필한 교과서는 나 자신이 편집한 것보다 훨씬 훌륭하고 종합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교사들 사이에는 교과서를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자신이 만든 교재를 가지고 수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어리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은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지식체계가 이루어집니다.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강조하고 어떤 부분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지나침으로서 그 결과는 지식의 편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는 교사로서 매우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각종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한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하듯이 지식도 폭넓게 섭취한 청소년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사려가 깊어져서 자신의 삶을 폭넓게 펼쳐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제자들의 앞날을 넓게 그리고 멀리 비춰줄 사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생각에 갇혀 어린 제자들에게 편협한 길을 인도한다면 이는 역사와 한 인간의 삶에 두고두고 죄를 짓는 일일 것입니다.

30년 외길!
돌이켜 보면 한결같이 보람되고 즐거웠던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못 견디게 괴롭고 힘든 순간도 있었고 때로는 쥐구멍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고 때로는 이 길을 걷기를 참 잘 했노라고 스스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낸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명예로운 퇴직을 하려 합니다.

퇴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퇴물이 되어 스스로도 제 갈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까봐 정신이 맑고 다리에 힘이 남아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택해서 나 스스로 새 생활을 찾아 자연인으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선배가 걸었던 힘들고 외로웠던 길을 나도 따라 걸었고 또 내가 걸었던 힘들고 외로웠던 길을 후배들이 따라 걸을 것입니다.
단지 앞서고 뒤선다는 차이 뿐 사도의 길은 똑 같은 것입니다.
다만 후배들이 나와 똑같이 이 자리에 섰을 적에는 보람된 열매들을 나보다는 더 많이 거두어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교육이 한 발자국 더 발전 하였노라 당당하게 외칠 수 있도록...

출처 : 행복시작
글쓴이 : 대오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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