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君子不器에 대한 동서양 해석
君子不器에 대한 동서양 해석
논어에서 통합형 인간을 君子不器라고 한다.
즉 君子는 그릇(不器)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자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군자를 제시하면서
군자는 한 가지만 정통하고 용납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분야에 식견을 갖춘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를 논하며,
‘군자불기’를 동양이 전문성과 직업적 윤리를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동양의 생각이 동양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았다.
『 유생들의 방심치 않는 자기제어, 즉 修身의 목적은 외면적 제스츄어나
고상한 매너의 품위를 유지하는데 있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修身은 기본적으로 審美的인 것이었으며
본질적으로 부정적 성격의 것이었다.
그 자체로서 위엄있는 품행, 아무런 실질적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품행만이 존중되고 욕망되었다
儒者들에게는, 세분화된 전문직종은
그것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有用한 것인가를 불문하고,
진정으로 긍정적인 권위를 갖는 위치로서 인식될 길이 없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공자가 "논어"에서 한 말,
문화적으로 교양을 쌓은 인간들
즉 군자는 하나의 기(器)로 국한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즉 군자는 이 세계에 대한 적응 즉 처세나 자신의 완성을 지향하는
수신의 방식에 있어서, 그는 그 자신이 최종적 목적이라고 생각할 뿐,
어떠한 기능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儒敎倫理의 이러한 핵심은 전문직종의 分業을 거부했으며,
근대적 전문직의 뷰로크라시(官僚性)를 거부했으며,
전문직종을 위한 특수훈련을 거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사상은
이윤의 추구를 위한 경제학의 훈련을 거부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양사회가 비합리적이며
근대사회 형성에서 낙후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었다.』
서양사회는 하나님을 믿고 내세에 천당이 있다고 믿는다.
나의 직업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天職이며 나의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召命에 부응하며 사는 일이고
이것으로 來世의 天國行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나의 삶의 목표는 내세의 천국행이므로
現世에서는 열심히 일하되 절제하고 禁慾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절제하는 생활이 지속되면 개인이 부자가 되며
이런 개인들이 모여 국가도 자본이 축적되어 부자나라가 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원리로 자본주의 강국이 되어 세계 자본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양은 ‘君子不器’라는 가르침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양에 비해 발전할 수 없었다는 논리다.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이 아니라는 뜻으로
한 가지 재능에 얽메이지 말고 두루 살피고 원만해야 한다는 뜻으로
즉,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서양에 비하여 과학적인 분석에서 뒤떨어지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동양사회가 비합리적이며 근대사회 형성에 있어서
낙후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오히려 막스 베버가 강조하던
전문성 논리를 君子不器로 비판한다.
선생은 전문성은 효율성과 경쟁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며
그러나 과거 동양의 군자는 文史哲, 詩書畵를 두루 익혔으며 ‘
고전, 역사, 철학이라는 이성뿐만 아니라 詩書畵 같은 감성에 이르기까지
두루 함양했으며 전문성이라는 것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일 뿐 결코 인간적인 논리가 못 된다고 이야기 한다.
『 ‘군자불기’는 우리 사회의 무수한 헛똑똑이들에게 날리는 경고입니다.
이언 맥큐언의 소설 <암스테르담>에는 헛똑똑이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일로써는 확실한 정체성을 형성한 인간, 하지만 일의 세계에서 나오는 순간
텅 비어버린 감수성과 도덕성으로 상대방을 당혹케 만드는 인간.’
대부분의 헛똑똑이들은 개인에 대한 성공엔 강한 열망을 나타내면서도,
나와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선 철저하게 무관심합니다.
우리 사회의 전문직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헛똑똑이들을 아주 우대하는 사회입니다.
자본의 논리대로 높은 효율성만 나타낸다면, 그 사람이 지닌 부족한 감수성과
도덕성은 쉽게 무시됩니다.
‘군자불기’는 감수성과 이성(효율성)에 대한 조화를 언급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선 효율성이 절대적 가치가 되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군자불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치유하는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효율성의 강조가 아닌, 사라진 감수성과 도덕성의 회복이 급선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