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虛作談論

• 억지 효행

아치울잡초 2012. 11. 5. 15:01

 

 

 

 

“사랑하는 우리딸, 지금 몇 시 인줄 알아?

아직까지 집에 안 들어오고 어디서 뭘 하시나? “

11시가 다 되어가자 아내는 신애에게 스트레스 주는 통화를 한다.

 

신애는 엄마가 그럴 때 마다

“엄마, 일찍 집에 들어가면 뭐해?

직장 끝나고 시내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어야지,

엄마가 전에는 엄마처럼 일찍 시집가지 말고

젊었을 때 연애도하고 이런거 저런거 마음껏 즐기고

시집은 천천히 가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찍 집에 가보았자 잠밖에 더 자겠어?”라며

젊은 청춘 한시도 아까워 누리겠다고 한다.

 

“너 지금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젊은 지지배가 밤늦게 쏘다녀!

지랄하지 말고 빨리 들어와!

11시 넘으면 문 잠가버리고 안 열어 줄 거야!“

거친 말투에 막무가내 아내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곤 야단치는 기세를 이어간다.

“너 언제 와? 너 들어 올 때 아파트 정문 제과점에서 ‘녹차케잌’ 사가지고 와!

엄마 먹어야 되니까!“.

 

11시가 조금 넘어 신애가 ‘녹차케잌’ 사들고 들어온다.

아내가 반색한다. “우리 딸내미 최고 !”

엄마기 성질냈다가 또 반색했다가 하니 신애는 정신이 없는 듯,

 

며칠 뒤 또 반복된다.

“너 어디야? 이게 밤늦게 쏘다니는게 아주 버릇이 됐구만!

너 지금 어떤 세상인줄 알아 ?“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전화를 걸고는

“너 집에 들어 올 때 집앞 과일가게에서 과일 좀 사와!”

 

몇 번 당하더니 언젠가는 신애가 사온 물건 내려놓으며 한마디 한다.

“엄마! 뭐 부탁할 거 있으면 좋은 말로 부탁하지

왜 꼭 먼저 늦게 들어온다고 야단부터 치고 부탁을 하셔, 치사하게?

아내는 방긋이 웃고 대답 않는다.

아이가 제 방에 들어 간 후 옆에서 지켜봤던 나도 한마디 했다.

“여보, 원래 당신 그렇게 치사한 사람 아닌 줄 알고 있는데

내가 생각해도 신애한테는 너무 치사한 것 같아,“

“왜 매번 늦게 들어온다고 야단치고 그걸 꼬투리 잡아서 뭐 얻어먹고 그러셔?

평소 당신답지 않게 너무 치사스런거 아닌가? 애한테 속보이게......

 

내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내가 한참 만에 입을 연다.

“여보, 당신 나를 참 모른다.

내가 그렇게 치사한 인간인줄 알아?

먹고 싶으면 그보다 더한 것도 사먹으면 되지

애한테 꼬투리 잡아서 빵이나 얻어먹고, 과일이나 사달래고......, 치사하게.“

 

아내가 차분히 얘기를 이어간다.

“내가 들은 얘기가 있어서 그래,

요즘은 부모가 딸한테 너그럽게 잘해주면

시집가자마자 바로 신경을 끊어 버리고 만데.

지 남편과 지 새끼들 챙기기 바쁘지 부모는 여벌이래,

그런데 부모가 평소 치사한 부모로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치사스런 부모한테 치사스런 소리 들을까봐

억지로라도 미리미리 챙기게 마련이라고 하더라구.“

“좋은 엄마로 기억되어 시집보낸 딸내미 잃게 되는 것보다

치사스런 엄마가 되어 딸 자주 보는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치사스런 짓 만들어 하는 거야!“

“난 치사스런 엄마 할 테니까 당신은 너그러운 아빠 하면 돼”

 

그날 나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