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虛作談論

• 사나이 붕정만리길

아치울잡초 2013. 4. 9. 18:52

 

 

 

 

 

장자에 보면 붕새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바다에 몇 천리나 되는 커다란 물고기 곤(鯤)이

둔갑을 하면 붕(鵬)이라는 새가 되고

이 새가 날개를 펴면 하늘을 덮고 날개 짓을 하면 颱風(태풍)이 부는데

그 태풍을 타고 9만리를 올라 6개월간이나 날아

남명(南冥·남쪽 어두운 바다)으로 날아간다는 붕새

 

붕정만리(鵬程萬里)는 붕새가 수십만리 남쪽바다를 향해가듯

사나이 대장부의 원대한 포부나 꿈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누구나 사나이 대장부로서 기개있게 붕정만리길 행보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을 때가 많다.

 

여의도공원에 진달래꽃이 이제사 피기 시작한다.

공원 산책행보 일행중 한 분이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며 ‘춘래불사춘’이라 하기에

‘호지무화초’라고 화답한지 벌써 보름이 지났건만

날씨는 따뜻하다가 춥다가 이처럼 변화무쌍한 것을 보면

올해 봄은 너무 더디고 겨울의 끝자락이 유난히 긴 것만 같다.

꽃들도 언제 미리를 내밀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공원 벚나무는 필 생각도 않는 것 같은데

윤중로 벚꽃축제는 매년 4월 15일경 시작된다고 하니

과연 그때가면 윤중로 벚꽃이 피어날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점심식사를 마친 여의도 셀러리맨들은

대개 여의도공원을 한바퀴 돌고 사무실로 향한다.

주로 할 말이 많은 20대 선남선녀들이 손짓, 몸짓 해가며

서너명씩 무리를 지어 이야기 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일행도 주로 4~5명쯤 무리를 지어 산책을 하는데

그들과 확연하게 다른 것은 그들보다 연령대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

외양으로도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행중 70대 중반이 두분이나 계시고

왕년에는 기업대표의 화려한 전력이 있지만

지금은 고문, 감사등의 직함으로 현역에서 활동중이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서 엄청난 일들을 하신 분들이며

칠십중반까지 현업에서 활동하시는 것은 실로 대단히 드문 경우이고

정말 붕정만리길을 걸어오신 분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연령에 어울리도록 주로 건강이야기를 화제로 대화가 오가는데

가끔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낭패스런 일이 일어난다.

걸어가며 방귀를 북북 흘리면

우리 주위를 지나치던 젊은 사람들이 흘끗흘끗 민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재빨리 지나친다.

꽃향기 좋은 여의도 공원에서 왜 내놓고 방귀를 껴대느냐고 하는 눈치지만

나이들면 괄약근이 통제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방귀를 흘리게 되는

어르신 속사정을 붙들고 설명할 수도 없으니

그저 아무일 없는 듯 발걸음 힘차게 내딛을 수 밖에.

붕정만리 위풍당당하게 살아오시면서 칠십대 중반까지 기운차게 일을 하시지만

그 연세가 되면 괄약근을 스스로 통제하는 일은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일인가 보다.

 

속사정 아는 우리는 어르신들 민망하실까봐 아무일 없었던 듯

얼른 다른 이야기를 꺼내어 분위기를 이어간다.

가끔은 곁에서 걷는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어르신들과 같은 취급을 받겠구나하는

섭섭한 생각에 피리소리의 빈도가 너무 잦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어르신 건강에 좋은 신호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고마운 소리라고 생각을 고쳐먹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