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울잡초 2013. 4. 18. 11:45

 

    

 

 

요즘은 혼인식장 풍속도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신부가 긴장하여 고개 숙인 채 다소곳이 입장했는데

요즘은 미소를 날리며 두리번거리면서 입장한다.

신랑이 만세삼창을 부르고 팔굽혀펴기 이벤트를 통해 힘자랑하는 것까지야 그렇다쳐도

일가친척 어른들 보는 앞에서 신랑신부가 당연스레 입을 맞추는

민망스런 일도 요즘은 예사가 되어버렸다.

 

어른들 앞에서 진중해야할 자리인데 좀 심하지 않느냐고 하면

이제 부부가 되는 마당인데 그것이 어떠냐고

오히려 구시대적 사람이라고 이상한사람 취급을 당한다.

 

꼭두새벽에 TV를 켜면 시골 노인네들에게 찾아가 입 맞추라고 강권하며

어르신들은 억지춘향식으로 자식, 손주들 보거나 말거나

생전처음 남들 앞에서 입을 갖다 댄다.

물론 남이 시켜줘서 핑계 김에 대중 앞에서 아내사랑 표현했다고 좋아할 분도 계시겠지만

글쎄 그것 때문에 갑자기 사랑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생겨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터

그저 이벤트였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벤트는 희소성에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인데

연로하신 분들을 통해서 그런 이벤트를 너무 자주 시도하는걸 보며

오히려 금새 식상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벤트는 또 다른 이벤트를 부르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식구들 생일기념행사만 있었는데 결혼기념일이다 뭐다 뭐다하더니

이제는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빼빼로니 뭐니, 내가 정하고 남이 정해주고

자고 깨면 온통 이벤트고 TV 프로도 덩달아 이벤트로 도배를 한다.

이젠 이벤트 아닌 날이 없고 이벤트 아닌 일이 없으니

양치기소년에게 “늑대다”라는 소리처럼 식언으로 들려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이벤트로 넘쳐나며 표현하기를 강권하며

진중하게 속으로 담아놓지 못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벤트만 창궐하는 사회는 뒷맛이 너무도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가버린 무대와 객석은 휑하니 너무나 쓸쓸하다.

공연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남겨진 무대의 공허감은 더 진하게 베어날 것이다.

이벤트란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섰던 배우가 생애 마지막 공연처럼

혼신을 다해 열정을 쏟아 공연을 했다면

그 희열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으로 남게 되며

 

객석에 있던 관객도 공연의 감동을 함께 교감하며 마음속에 담아간다면

그 관객은 허전함보다는 뿌듯함을 안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혼인풍습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정말 생애 한번인데 진중하게 그리고 엄숙하게,

 

TV프로도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좋은 프로도 많지만 이벤트보다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으로,

 

그래서 좀 차분한 사회분위기 속에 가끔은 진정성이 있는 축제가 열리고

그리고 그 속에서 도시에서 지치고 허기진 마음 위로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