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세상잡사

• 시키는대로 했을 뿐? 국정원직원 기소유예 단상 (daum아고라에서)

아치울잡초 2013. 7. 9. 10:04

 

 

 

시키는대로 했을 뿐? 국정원직원 기소유예 단상

 

“나는 국가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다. 나도 피해자다” - 고문기술자 이근안

 

‘나쁜 권위에 대한 복종’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는 인류사의 오래된 난제이다.

잘못된 명령을 내린 ‘권위’를 처벌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명령을 실행한 ‘복종'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상명하복이 최고의 도덕으로 여겨지는 군대나 유사군대(ex:정보기관)의

명령체계 아래서 벌어진 ‘복종범죄’는 권위적인 사회에서 쉽게 동정을 얻는다.

국가가 ‘복종범죄’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의 검찰은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결정을 내렸다.

 

어제 대한민국 검찰은 원세훈 원장의 지시를 받았던 '복종범죄자'들을 풀어줌으로써

공무원의 ‘위법한 명령에 따를 의무’를 인정했다.

그들은 국정원 직원들이 저지른 위법행위의 중대함보다

상명하복 문화의 '미덕'을 더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어떤 국가기관의 범죄자라도

<명령-복종 관계>만 입증한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만약 나치대원들이나 731부대원들이 대한민국 검찰의 손에 맡겨졌다면

그들은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제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만약 원세훈 전 원장이 자신도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다면 그 역시 풀려날 수 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법정재판이 흥미진진해진 이유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최고 명령권자가 누구였는지 밝히는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미셀 푸코, 허버트 켈만, 스탠리 밀그램 등 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복종에 의한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가범죄는 명령자가 아닌 그것을 실행하는 ‘복종자’들의 손에 의해 자행된다.

2차대전중 벌어진 유대인학살은 명령을 내린 히틀러의 손이 아닌

단지 그의 명령에 따랐던 수천 수만의 나치대원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나치대원들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600만이 살해된 홀로코스트에 대해 최고명령자인 히틀러만 처단하면 충분한가?

 

만주 731부대에서 이루어진 끔찍한 생체실험에 대해

최고 명령자인 도조 히데키만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

그저 '전두환의 국가'로부터 받은 명령을 따랐을 뿐인 이근안을 풀어줘야 하는가?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면 이 세상의 수많은 관료들이 영혼없는 부품으로 전락했을 것이며,

수없이 많은 '복종을 가장한 범죄'들이 판을 쳤을 것이다.  (daum아고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