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에는 悲歌와 함께
계사년도 섣달, 연말이 되었다
섣달이 되면 각종 송년모임이 있게 마련이고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겨난다.
지금은 누구나 대부분 노래를 잘하지만
지난날 나와 함께 직장생활을 했던 동료들은
내 노래 실력을 인정해 줬었고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면
몇 십 년 지난 지금도 내 노래를 들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노래를 잘한다고 인정을 받게 되면
다소 번거롭지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하여
생활 속에서 ‘노래관리’가 필수적으로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부르기 좋고 사람들 귀에 익숙한 노래를 정하여
해마다 한곡씩 연습을 하고 섣달이면 실전에 써먹는 전략을 세웠고
지난해 송년회에서는 ‘모란동백’이라는 노래로 재미를 좀 봤었다.
그리고 올해는 아들녀석이 강력 추천하여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를
지정곡으로 연습을 해 왔는데 개봉을 안했으니 결과는 아직은 미지수다.
관객들이 예전에는 나더러 왜 그리 축축 처지는 노래만 하냐며
강력하게 항의를 하여
그들의 주문에 따라 분위기 좀 살릴 겸 빠르고 신나는 노래를 하려고
몇 번 그렇게 시도해 봤었지만 결국은 예상과 같이 별무신통의 결과,
하는 수 없이 다시 느리고 처량한 노래로 원위치 하였는데
요즘에는 관객들이 연만하셔서 그런지 그런 항의가 없어졌고
때문에 선곡이 아주 쉬워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관객의 주문을 접할 때 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다.
과연 분위기 살리려면 빠르고 신나고 소리 지르고 열광해야만 할까?
열광하면 할수록 뒷감당이 힘든 것은 아닐까?
오히려 느리고 서글픈 노래 속에서 분위기가 서서히 UP되지 않을까?
연극이 끝난 후 관객이 모두 돌아가고
텅빈 객석을 바라보는 연기자가
처절한 고독감을 감내하고
오히려 그 서글픔을 환희로 승화시키는 것처럼
그렇게 분위기는 연민과 서글픔을 함께하며
내공 속에서 서서히 승화되는 것은 아닐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고
외양보다 속내를 중시하고
그래서 ‘陽陰’이 아니라 ‘陰陽’으로 생활하는 우리네 정서에는
빠르고 환호하고 열광하는 노래보다는
오히려 느리고 슬픈노래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내 노래는 항상 서글픈 悲歌 일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