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너무 강해
어제 아침 갑자기 아내가 선배부인으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았다.
나에게 직접 전화를 않고 굳이 아내에게 통화를 한 이유인즉
내가 매사 너무 시시콜콜 따져서 명분 약한 일로 나에게 불편한 제안했다가는
비록 후배지만 거절당하기 십상일거라 싶어 그리했다는 나중 설명을 들었었다.
나는 시비지심이 너무 강해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 많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도 함께 지내다가 어쩌다 한번 소원해지면
좀처럼 끌어안지 못하고 끊임없이 밀어낸다.
심지어는 친목모임에서도 친구가 그저 분위기 반전시키려고
어설프게 어거지 소리라도 하게 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반드시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달려든다.
과장된 몸짓이나 애정표현으로 불편한 분위기를 얼렁뚱땅 넘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절대 오버액션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드물게라도 애정포현을 하지 못하며
자녀들에게도 포옹이나 드러나는 애정표현을 못한다.
특별한 용무 없으면 지인에게 안부전화를 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행태가 때로는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과장이라는 것과는 대칭점에 위치한 시비지심이
너무나 강한 것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옳고 그름을 양단간에 가리는 일만이 만고의 지선이 아니라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규명 않은 채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는 병들기 쉽다고 여겨진다.
민초들의 개인사인 경우 사소한 일쯤은 얼렁뚱땅 넘기는 일도 있어야
부드러워질 수 있다 하겠지만
엄중한 나랏일이야 얼렁뚱땅 넘기다 보면 사회질서가 무너져 내려
커다란 사단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나랏일은 그야말로 매사에 시비지심을 가지고 잘잘못를 엄하게 가려야
사회가 성숙하게 될 것이고 이를 감시해야할 책무가
오늘날의 지식인의 책무가 아닌가 싶다.
내게 일어난 어제오늘의 일을 보며 사소한 개인사를
너무 엄중한 나랏일처럼 대함으로서 그동안 주위 사람들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은 아닌가 하여 미안스럽기도 하다.
시비지심 (是非之心)은 맹자의 사단칠정(四端七情)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是非之心)은 지혜의 극치라 했다.
이시대 지식인이 가져야할 덕목은 시비지심(是非之心)에서 출발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한 연후에 측은하게 여기고 또는 부끄러워하며
또는 예로써 사양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시시비비(是是非非)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으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우러날 수 없으며
부끄러워 하는 마음(羞惡之心)도 생겨날 수 없으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왜 그토록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