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청사우(乍晴乍雨)
사청사우(乍晴乍雨)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乍晴還雨雨還晴 (사청환우우환청)
天道猶然況世情 (천도유연황세정)
譽我便應還毁我 (예아편응환훼아)
逃名却自爲求名 (도명각자위구명)
花開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雲去雲來山不爭 (운거운래산부쟁)
寄語世人須記認 (기어세인수기인)
取歡無處得平生 (취환무처득평생)
잠시 맑다 비 내리고 비 내리다 다시 개이네
하늘 이치 이럴진대 인간 세상 어떠하랴
나를 칭찬하더니 어느새 나를 헐뜯고
명예를 마다하더니 문득 명예 구하는구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관여하며
구름 가고 오는 것을 산이 어찌 다투겠느냐
세상 사람들아 이 말을 알아 두소
기쁨만을 한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매월당 김시습은 천재였다.
세 살 때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통달했다고 한다.
어느 날 세종은 승지를 시켜 김시습을 불러 시험 한다.
‘어린 아이 학문이 흰 학이 푸른 소나무 끝에서 춤추는 것 같아라’
童子之學 白鶴舞靑松之末 (동자지학 백학무청송지말)
라고 시구를 읊으면서 대구를 맞추게 했다.
그랬더니 5살의 김시습은 주저 없이
‘성스러운 임금의 덕은 황룡이 푸른 바다에서 번득이 듯 하더라’
聖王之德 黃龍翻碧海之中 (성왕지덕 황룡번벽해지중)고 대답했다.
세종은 어린 김시습의 천재성에 놀라 명주 50필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문에 정진하던 김시습은 훗날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책을 불살랐다.
그리고 머리 깎고 방랑의 길에 들어섰다.
21세 때의 일이다.
이후 팔도를 방랑하며 글로써 세상의 불의함과 허무함을 고발했다고 한다.
하늘도 맑았다가 어느새 비오고 비 오는가 싶더니 금새 맑아지고(乍晴乍雨) ~
하늘 이치도 그러한데 인간사(人間事) 속절없이 변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
생각해보면 허무하지만 인간 만사가 영원한 것 없고 그저 잠시일 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 천만년 영원할 것처럼 움켜쥐고 산다.
돈도 명예도 미움도 원망도 그리고 아픔까지도
그래서 해마다 오월에는 우리에게도 기쁨과 슬픔이 극명하게 교차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일, 노대통령 서거일
우리는 언제 쯤 움켜쥔 손 활짝 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사로운 오월햇살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
매월당의 사청사우(乍晴乍雨) 가 생각나는 오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