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때로는 방관자처럼

아치울잡초 2020. 2. 6. 20:46

오늘 점심식사는 광고회사 대표와 함께 했다.

10년 전에 불과 천만원짜리 광고를 수주하러 나를 찾아왔었는데

지금은 연매출 100억을 달성한다고 성공신화를 들려준다.

전에는 본인이 모든 것을 손대야 직성이 풀렸는데

요즘은 모든 일을 직원들에게 맡겨놓으니 오히려 일이 더 잘되어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이제야 도통(道通)하셨구만한마디 했다.

 

題西林壁 蘇東坡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가로로 보면 첩첩이 산등성이고,

옆으로 보면 뾰쪽한 봉우리인데

멀리서 또 가깝게, 위 그리고 아래에서 보아도

제각기 다른 모습이로구나.

여산의 참모습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네.

 

이 시에서 유래된 여산(廬山)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에 있는 산이다.

소식(蘇軾)은 여산의 '오묘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이처럼 시 한 수를 지었다고 한다.

 

사물을 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제각각으로 보인다.

또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길 때 우리가 그 해결책을 잘 찾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문제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인생 안에 있을 때 그 인생을 이해 할 수 없으며

涅槃(열반)의 경지에 가야 비로소 인생의 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인생을 너무나 진지하게 몰두하며 살아갈 때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한다.

때로는 방관자처럼 헐렁하게 살아갈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장기나 바둑판에서 대국자 보다

곁에서 훈수 두는 사람의 실력이 다소 떨어져도

때로는 더 좋은 수를 찾아내는 이치와 같다고 한다.

이를두고 중국속담에서는

當局者 迷 傍觀者 淸 (당국자 미 방관자 청)이라 한다.

당국자는 미혹되어 수를 잘 못 읽어내고

곁에서 훈수 두는 사람은 맑은 정신으로

수를 잘 읽어낸다는 말이다.

 

우리 인생도 너무 열심히 진지하게만 살지 말고

때로는 내 인생의 방관자가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