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중월(이규보)
영정중월(詠井中月)? : 李奎報(이규보)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달빛이 탐나서
산 속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항아리에 물과 함께 달을 가득 담았다네.
절에 돌아와 비로소 깨닫건대
항아리 물을 쏟고 나면 달빛도 사라지고 말겠네.
공간적 배경은 절간이 자리 잡은 깊은 산 속이다.
조용한 저녁 시간이다.
맑은 하늘에 달이 오르고
스님은 절간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다.
산사의 저녁은 조용하며
사람의 말소리나 짐승의 물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 멀리 높이 뜬 달만이 온 산천을 곱게 비추고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달빛이 쏟아지고 있다.
절간 모든 경내에도 그 달빛이 내리고 있다.
스님은 그 달빛에 취했다가
자기의 본연 임무를 깨닫는다.
우물의 물을 긷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 곱게 뜬 달이 우물에도 떠 있지 않는가.
스님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의 달을 쳐다본다.
아름다운 달이다. 곱기만 하다.
달빛이 손길에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렇게 고운 달이 우물에 담겨 있는 것이다.
잔잔한 우물에 청아한 달이 담겨 있는 것이다.
스님은 순간적으로 작은 욕망이 솟아올랐다.
이 고운 달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항아리에 물을 담으며
그 달을 함께 담아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항아리에
물과 함께 달을 담아 가기로 작정하였다.
항아리에 물도 달도 넉넉히 담았다.
마음이 아주 편하다. 기쁘기만 하다.
하늘에는 여전히 달이 떠있다.
스님의 물 항아리에도 달이 담겼다.
스님은 이 순간 불교에서
추구하는 무소유의 원칙을
어기고 작은 탐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달도 탐내어서 안 된다는
깨달음을 잠시 잊어버린 것 같다.
스님은 절간에 돌아 와서
큰 항아리에 가져온 물을 부었다.
아마 물을 보관해 두는
큰 항아리는 달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있었을 것이다.
스님이 항아리에 물을 붓자,
달빛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달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애써 항아리에 담아 온 달이 그만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실망하지 않는다.
하늘의 달은 언제나 변함 없이 떠 있다.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고 있다.
혼자 빙긋이 웃고 만다.
이 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한 발상이 담겨 있다.
하늘의 달을 절간으로 가져오고
싶은 동심을 표현한 것이다.
천재 시인 이규보의
시적 감각이 담겨 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순진한 어린 아이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다.
자연은 언제나 무언의 위안과 평화를 주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시인 이규보의 발상은 참으로 멋스럽다.
하늘에 뜬 달이 우물에 비치고
그 달을 다시 절간으로 퍼 오겠다는 발상은
조선 중종 때의 기녀 황진이가
동짓달 긴 밤을 베어다가
춘풍 이불 속에 고이고이 접어 두었다가
사랑하는 임이 오신 밤에 고이고이 펴서
임과 함께 오래오래
사랑을 속삭이고 싶다는 발상과 비슷하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루겠다는 발상이 이렇게 표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