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風水등/漢詩·漢文

戰死易 假道難

아치울잡초 2006. 10. 4. 09:21

 

 

동래부사  송상헌 장군의 얘기

 

 

왜구 소서행장이  송상헌장군에게
가도입명(假道入明)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다오
征明假道

 

송상헌 장군은 -
전사이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죽기는 쉬우나 길 내주기는 어렵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임진왜란 당시 5만 대병(大兵)으로 왜군이 침입하자 무관(武官)인 경상좌병사 박홍(朴泓)을 비롯하여 많은 장수들도 진지(陣地)를 버리고 도망갔는데

원군(援軍)도 없이 문관(文官) 출신인 그가 홀로 동래성을 사수(死守)할 때 왜장(倭將) 고니시유끼나가(小西行長)가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우리에게 길을 비켜달라

[전즉전의 부전즉가아도(戰則戰矣 不戰則假我道)]」"하고 항복을 강요하자,

 

조선의 사대부로 국록을 먹는 신하가 한 고을을 다스리는 목민관(牧民官)이 되었으니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답장을 보내고

 

작은 군사를 독려하여 끝까지 항전하다가 마침내 함락되자 왜장에게 잠시의 말미를 얻어 군복을 벗고

사도복장(司徒服裝)으로 의관(衣冠)을 정제한 후에 북쪽 한양을 향하여 성(城)을 지키지 못한 불충(不忠)을 상감께 사배(四拜)로 고(告)하고 서쪽 전주를 향하여 77세로 아직 고향에 생존해 계시는 아버지께 나라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다가 세궁역진(勢窮力盡)하여 먼저 죽게 되는 불효(不孝)를 용서하라는 재배(再拜)를 올린 다음

이제는 되었으니 내목을 처라. 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여 42 세로 죽으니 왜장 고니시도 그의 충성(忠誠)과 효심(孝心)에 감동하여

시신(屍身)을 잘 수렴하여 동문(東門) 밖에 장군의 예우로 장사하였다는데 지금 부산 동래의 충열사 공원은 송상현 부사님의 충성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위하여 조성한 것이고

육군사관학교 전쟁박물관에 소장, 전시하고 있는「동래성혈전도」는 우리들에게 비장한 느낌을 준다.

 

뒤에 이조판서·좌찬성으로 추증되었으며,

부산 충렬사(忠烈祠)외, 개성 숭절사(崇節祠),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송부사의 행리), 고부 정충사(旌忠祠), 청원 충렬묘(忠烈廟) 등에 제향 되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