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울잡초 2006. 10. 13. 13:35

    靜夜思       李白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고요한 밤의 그리움  

   

침상 앞에 밝은 달빛,
땅 위의 서리인 듯하다.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가,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이 시는 객이 되어 타향을 떠돌던 시인이 달빛 밝은 밤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적은 것이다.

 

침상 앞은 밝고 희게 빛나는 달빛에 젖어 있다.

마치 땅 위에 흰 서리가 내린 듯하다.

달빛이 너무 좋아서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둥그런 달이 창 앞에 걸려 있다.

가을 밤의 하늘은 너무도 맑고 깨끗하다. 

그 밝은 달을 응시하면서 시인은 멀리 고향의 그리운 가족들을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니 점점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움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이 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필치로써 가을밤 달빛 비치는 경물과 고개 숙이는 사람의 동작과 결합시킴으로써 강렬한 사향에의 정을 묘사해내고 있다.

 

시의 내용은 단순하나 감정은 진지하다.

언어는 말하듯 분명하여 손이 가는대로 쓴 것 같으나

오히려 풍부한 감염력을 갖고 있어, 독자들의 공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시를 감상함에 있어 ‘밝은 달’과 ‘사향’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 시인은 밝은 달을 바라다 보면서 고향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이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는 보다 구체적인 이유가 담겨져 있다.

 

달, 그것도 보름달과 같이 둥근 달은 전 가족의 만남을 상징한다.

둥근 달은 온 가족이 고향집에서 둥그렇게 둘러 앉아

얘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상징인 것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전란이 많아 사람들은 자주 부모형제처자와의 이산의 고통을 당해왔다.

광대한 땅의 구석 구석에서 뿔뿔히 흩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가장 큰 소망은 바로 온 가족이 다시 모이는 것이다.

 

중국의 민속 중에서 중추절이면

보름달처럼 둥근 월병이라는 떡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 월병은 바로 이러한 온 가족이 함께 모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 중국의 희곡을 보면 그 결국이 모두 ‘대단원’으로 맺어지고 있는데,

여기서 대단원의 단원은 중추절이 되어 온 가족이 다 모인다는 뜻을 갖는 단어이다.

 

즉 희곡의 전과정에서 온 가족들이 어려움을 만나 뿔뿔히 헤어지게 되었다가

다시 만난을 극복하고 온 가족이 함께 모임으로써 극을 맺는다는 것이다.

 

시인이 밝은 달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고향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달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징적 속성 때문인 것이다.


  이 시를 감상하다보니 한 가지 재미있는 발견이 있어서 적어본다.

앞에서 다른 시를 감상할 때도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작품의 수직적 이동과 수평적 이동을 따져 보는 일이다.

 

첫 구에서는 밝은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수직적인 이동이 있다.

둘째 구에서는 지상에 편만하게 깔린 서리를 바라보는 수평적인 이동이 있다.

세째 구에서는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는 수직적 이동이,

마지막 구에서는 멀리 고향을 생각하는 의식의 수평적 이동이 있다.

 

이러한 수직과 수평의 교묘한 교차는 시에 일종의 입체감을 제공하는 한편 시를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기도 한다.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李白

故人西辭黃鶴樓 烟花三月下揚州
孤帆遠影碧空盡 唯見長江天際流

 

 

黃鶴樓에서 廣陵 가는 孟浩然을 송별하며

 

친구는 서쪽에서 黃鶴樓를 이별하고,
꽃 흐드러진 삼월에 揚州로 내려간다.
외로운 돛단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 속에 사라지고,
오직 長江만이 하늘 끝으로 흘러간다.

 

  이 시는 이백이 무창(武昌) 황학루(黃鶴樓)에서 양주(揚州)(즉 廣陵, 지금의 강소성 양주시)로 가는 맹호연(孟浩然)을 송별하면서 지은 시이다.

 

시제에서 이미 밝히고 있듯이, 송별하는 장소는 바로 황학루이며, 떠나가는 사람은 장강으로부터 동쪽으로 내려가서 광릉으로 가는 것이 된다.
  앞 두 구절은 서사이다.

송별의 지점과 시간 그리고 친구가 가는 곳을 밝히고 있다. 고인은 맹호연이다.

 

무창은 양주의 서쪽에 있고, 행인은 장강으로부터 물결을 따라서 동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서쪽 황학루에서 이별한다.’고 한 것이다.

 

 ‘삼월’은 계절을 밝힌 것이며,

 ‘연화(烟花)’는 온갖 꽃들이 비단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기운이 몽롱한 봄날의 농려한 풍경을 개괄적으로 형상해낸 것이다.

이 아름다운 양춘가절에 친구는 화려한 도시 양주로 간다.

이러한 상황은 이 송별시로 하여금 특별한 운치를 갖게 하여 시정이 충만한 이별을 표현하게 하고 있다. 


  뒤 두 구절은 멀리서 바라본 풍경으로써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두 구절은 보기에는 단순한 사경으로서 장강의 장려한 모습을 묘사한 것일 뿐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신의 친구를 보내면서 떨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적고 있는 것이다.

이백은 배에서 친구를 송별한다.

배는 이미 돛을 달고 떠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강변에 서서 멀리 떠나가는 배를 눈으로 전송한다.

그 돛의 그림자가 점점 작아져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마침내 외로운 배의 먼그림자는 푸른 하늘 중에서 사라지고 만다.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탕탕히 흐르는 장강일 뿐이다.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는 장강은 마치 하늘 끝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하늘과 물의 공활함을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친구에 대한 넓고 깊은 정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송별시는 밝고 아름다우면서 광활한 경치를 묘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별의 정서를 그 속에 암암리에 기탁을 하고 있어 특별한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즉 장강 유역의 아름다운 봄날 풍경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백의 맹호연에 대한 깊은 우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경계가 광활하고, 풍격이 고원할 뿐만 아니라, 문사가 한숨에 내달아 쓰여진 것이어서 마치 ‘장강이 하늘 끝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이백의 호매하고 매이지 않는 개성과 서로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백의 깊은 정은 호호탕탕 동으로 흘러가는 봄 강물과도 같다.

 

이백의 간절한 그리움이 이 시정이 풍부한 시 가운데 잘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