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虛作談論

단풍과 지는해

아치울잡초 2006. 10. 23. 17:56

 

지난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도봉산에 올랐다.
節氣上으로는 秋夕 지나 서리 내린다는 霜降이 낼 모랜데 반소매 복장도 山行에는 땀이 났다.
滿山紅葉을 기대하고 산에 올랐더니 추울 때 춥지 않은 날씨 때문에  紅葉이 되기 전에 누런 落葉이 되어 벌써 땅위에 뒹굴고 있는 모습에서 昨今의 심한 가뭄이 느껴졌다.
계곡에 그 많던 물은 다 어디로 흘러갔는지 계곡 바닥은 허연 돌멩이들만 나뒹굴고 보기에 정말 안타까웠다.
낙엽을 보며, 가뭄에 시달리는 계곡을 보며 그리고 가을임을 도무지 느낄 수 없는 날씨탓인지 秋霜이라는 단어가 새삼 떠올려졌고 "自然界가 한 해에 몇 차례 颱風과 雷聲霹靂을 쳐서 生態界를 추스린다“하시던

전우익 선생의 글을 다시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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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중에서

 

해마다 落葉을 보며

嚴冬에 까맣게 언 솔잎을 보며 느끼는 일입니다.
참 삶이란 부단히 버리고

끝끝내 지키는 일의 통일처럼 느껴집니다.

新陳代謝가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生命의 運行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가을의 落葉에서는 버림, 淸算을 決行하고

겨울의 얼어붙은 솔잎에서는

極限의 逆境에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라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침을 배운다고 여기면서도

그게 쉽지 않고 버리기도 지키기도 힘들다는 점만을

알 따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정쩡하게 목숨만 이어갑니다.

버릴 줄 알아야 지킬 줄 알겠는데 버리지 못하니까

지키지 못합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

누에를 쳐 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디다.

 


脫皮 脫殼 없이는 生命의 成長과 成就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脫皮 脫殼을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단풍과 지는 해가 山川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때때로 인생의 마지막을 저렇게 멋지게 마치지 못할 망정

추접게 마치지는 말아야 할텐데 하고 느낍니다.

 


사실 마지막이란 日常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디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아닐진대

삶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끝마침도 제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自然의 運行과 歷史의 課題에

충실한 삶을 사는 건데 세상의 흐름은 自然과 멀어지고

歷史보다는 瞬間과 개인적인 삶으로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寒露와 秋霜이 落葉과 決算을 決行하듯

각자는 자기에게 秋霜같을 수 있어야

墮落과 踏步에서 벗어나 옳게 살 수 있고,

民族도 때로는 秋霜을 내리고 霹靂을 쳐서 民族精氣를 바로 세워야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버무림은 丹楓도 落葉도 가져오지 못하고

더더욱 새로운 生命을 誕生시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壓殺시키고 말겠지요.

 


自然界가 한 해에 몇 차례 颱風과 雷聲霹靂을 쳐서

生態界를 추스리듯

개인과 사회도 그런 일이 생겨 生命을 추스리고

沈滯의 늪에서 떨쳐 일어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