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이야기
秋史 金正喜 와 원교 이광사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것이 원교 이광사인데, 어떻게 안다는 사람이 그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버젓이 걸어놓을 수 있는가." 추사 김정희가 주창한 금석학과 고증학은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뿌리부터 검증하는 일이었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강희 . 건륭 연간에 일어난 이 신학문을 더이상 오랑캐 학문이라고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스승 박제가의 훈도를 받고, 24세 때 아버지 따라 북경에 가서 그 학문과 예술의 번성함을 보고는 더욱 확신을 얻어 여기에 매진하게 된다. 글씨에 있어서도 그동안 조선의 서체는 원교 이광사의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개성적이며 향색(鄕色), 즉 민족적 색채가 짙은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는데 추사는 이를 글씨의 고전, 중국 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