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내 아버님 7

• 말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아버님은 매일 시장경로당으로 출근하신다. 달력에 빨간날 표시가 없으면 상일역에서 을지로4가역까지 계단을 오르내리시며 지하철을 타고 다니시니 그것만 해도 米壽지난 아버님께는 꽤나 많은 운동량이며 건강의 비결도 될 수 있다. 그곳 경로당에는 20여분의 어르신들이 계셨는데 화가출신에 기업체 오너, 금융인,땅부자, 상인 등 전력도 다양하고 70대부터 80대 후반까지 연령분포도 폭넓게 구성되어 있었다고 하신다. 한해두해 그 인원이 줄어 이제는 열 대여섯분 정도 모이시는데 물론 그중에 대장은 가장 연장자이신 아버님이시고 먼저 가시는 분들이 안타깝게도 아버님보다 새파란 분들이시라며 묘한 표정으로 밀씀을 하신다. 함께 바둑, 장기들도 즐기시고 왕년의 무용담(?)도 늘어놓으시고 정치얘기며 문화이야기며 고담준론도 나누시는..

• 추석에 아버님을 모시고

아버님을 모시고 추석을 함께 지냈다. 올해 88세 米壽이신 아버님이시지만 정정하시다. 오늘은 32살먹은 손자녀석에게 스마트폰 설명 들으시느라 바쁘시다. 한해 한해 체구는 작아지시는 것 같으신데 기억력이나 지식습득에 대한 열정만은 조금도 식지 않으시는 참으로 고매한 정신력을 지니신 자랑스런 아버님. 아마 百壽는 거뜬하실 것 같다. 일본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신 아버님은 지금도 궁금한 것을 못 참고 배우시며 오늘도 추석 아침 밥상에서 일본에 대한 강의가 매우 구체적이셨다. ‘시코쿠’, '신주쿠, ‘이바라기현’이니 ‘도꾸가와이예야스’와 ‘풍신수길’이 전투한 곳이 어디라는 등 일본지명 설명이 있고 난 후 학창시절에 오오사카 골목 골목을 헤집고 다니시면서 우유배달등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버신 일이며 어쩔수 없이..

아버님의 입맛

며칠 전 아버님을 찾아뵙고 안부를 드렸었다. 나이가 드시다 보니 이제는 음식을 입에 넣으셔도 도대체 맛을 모르겠다고 하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 맛이 있어서 먹고 싶기도 하고 먹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셔서 무언가 궁금해지고 이런 저런 일들을 기웃거리곤 했는데 이제는 음식을 드셔도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냥 드시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자식들이나 친지들이 아버님께 음식 대접을 해 주시면 그래도 대접해 준 사람들 입장을 생각해서 ‘아! 맛있게 잘 먹었다.’라고 하시지만 사실은 무슨 맛인지, 맛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일상의 삶도 음식맛과 같아서 도대체 사는 맛이 없어지셨다는 것이다. 구십이 다 되고 보니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혹시 지금 인생을 마..

아버님 휴대폰 알람

아버님 연세 87세 오후 4시가 되면 기력이 떨어지셔서 보이는 사물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신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아득한 느낌이 들어 바로 눈앞에 주전자를 두고도 주전자인지 다른 무엇인지 판단을 못하게 되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한 시간쯤 그렇게 혼미한 상태가 지속되다가 차츰 정신이 들게 되는데 그런 증상이 거의 매일 반복된다는 것이다. 아마 나이 들어 기력이 쇠잔해져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증상일거라 하시며 이렇게 진행 되다가 정신 줄을 놓고 세상 하직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냐며 걱정하신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빵이며 초코렛 등 무엇인가 조금만 드시게 되면 그런 증상이 없어진다고 하신다. 그래서 주머니에 빵이나 과자 등 간식거리를 지니고 계시다가 오후 4시가 되면 꺼내 드신다는..

아버님 건강비결

善攝生者以其無死地 선섭생자이기무사지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죽음의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貴生死地 귀생사지 편안하게 사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攝生의 攝은 집착을 줄이고 억제하는 것이다. 거친 음식 먹고 조금은 춥고 힘들게 사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최적화 시킬 수 있다. 내 몸을 귀하게 여겨 좋은 옷 입고 좋은 차타고 좋은 곳에서 자게 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일일까 ? 대추나무에 대추를 많이 열리게 하려면 염소를 묶어 나무를 괴롭히거나 또는 그 나무를 자꾸 두들겨 패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대추나무가 긴장을 하여 대추를 많이 열고 자손 번성시키려는 노력을 필사적으로 하게 된다고 한다. 물질의 풍요와 편리함이 내 몸을 死地로 몰아 녛으며 내 몸을 적당히 괴롭혀야만 그것이 오히려 내 몸에 도움이..

어머님의 유산

孝於親이면 子亦孝之하나니 身旣不孝면 子何孝焉이리요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역시 효도한다. 자신이 이미 불효하면 자식이 어찌 효도하겠는가? 작년 여름 사랑하는 내 어머니께서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세상 떠나면 장판 밑을 잘 뒤져 보아라”라는 말씀을 남기신 채. 어머니 유품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장판 밑을 보았더니 동네 마을금고통장이 나왔고 그 안에 무려 2천만원이 적립되어 있었다. 평소 생활비 타 쓰는 것도 늘 부담스러워하며 생선 한 마리 사려면 몇 번이고 망서리시던 알뜰하신 어머니셨는데 어찌 이리 큰돈을 지니셨던지....... 자주 다니시던 병원에서 병원비가 평소보다 조금 많이 나오면 아들에게 부담된다고 걱정하시던 모습이 아버지께서 곁에서 보시기 너무나 안타까우셨다는데 그래도 장..

백범의 어머니

어느 날 간수가 와서 나를 면회소로 데려갔다. 누가 왔는가 하고 기다리노라니 판자벽에서 딸깍하고 주먹이 하나 드나들 만한 구멍이 열렸다. 그리로 내다보니 어머님이 서 계셨고 곁에 왜놈 간수가 지키고 섰다. 근 일고여덟 달 만에 면회하는 어머님은 태연하신 안색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경기감사나 한 것 보담 더 기쁘게 생각한다. 네 처와 화경이 까지 데리고 와서 면회를 청했는데 한 번에 한사람 밖에 허락하지 않는데서 네 처와 화경이는 저 밖에 있다. 우리 세 식구는 평안히 잘 있다. 옥중에서 몸이나 잘 있느냐? 우리 근심 말고 네 몸이나 잘 보중하기 바란다. 만일 식사가 부족하거든 하루에 사식 두 번을 들여 주랴 ?” 오랜만에 모자 상봉하니 나는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저같이 씩씩한 기질을 가지신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