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간수가 와서 나를 면회소로 데려갔다.
누가 왔는가 하고 기다리노라니
판자벽에서 딸깍하고 주먹이 하나 드나들 만한 구멍이 열렸다.
그리로 내다보니 어머님이 서 계셨고 곁에 왜놈 간수가 지키고 섰다.
근 일고여덟 달 만에 면회하는 어머님은 태연하신 안색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경기감사나 한 것 보담 더 기쁘게 생각한다.
네 처와 화경이 까지 데리고 와서 면회를 청했는데
한 번에 한사람 밖에 허락하지 않는데서
네 처와 화경이는 저 밖에 있다.
우리 세 식구는 평안히 잘 있다.
옥중에서 몸이나 잘 있느냐?
우리 근심 말고 네 몸이나 잘 보중하기 바란다.
만일 식사가 부족하거든 하루에 사식 두 번을 들여 주랴 ?”
오랜만에 모자 상봉하니 나는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저같이 씩씩한 기질을 가지신 어머님께서 개 같은 원수 왜놈에게
자식 보여 달라고 청원하였다고 생각하니 황송한 마음이 그지없다.
다른 동지들의 면회 정황을 들어보면
부모처자가 와서 서로 대면하면 울기만하다가
간수의 제지로 말 한마디 못하였다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어머님은 참 놀랍다고 생각된다.
나는 17년 징역선고를 받고 돌아와서
잠은 전과 같이 잤어도 밥은 한 끼를 먹지 못한 적이 있는데
어머님은 어찌 저리 강인 하신가 탄복하였다.
나는 실로 말 한마디를 못하였다.
그러다 면회구가 닫히고 어머님께서 머리를 돌리시는 것만 보고
나도 끌려 감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이 나를 대하여서는 태연하셨으나
돌아서 나가실 때는 반드시 눈물에 발부리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이 면회 오실 때 아내와는 물론 많은 상의가 있었을 것이요,
내 친구들도 주의를 해 드렸을듯 하지만,
일단 만나면 울음을 참기가 지극히 어려울 것인데
어머님은 참으로 놀라운 어른이다.
* 일제는 1910년 12월 27일 압록강 철교 준공식에 참가하려는
사이또총독을 암살하려고 모의하였다는 혐의로
애국지사 600명을 검거, 투옥하였고 그중 105인을 기소하였다.
그리고 그중 6명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백범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 "백범일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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