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내 아버님

백범의 어머니

아치울잡초 2008. 3. 16. 19:27

 

 
어느 날 간수가 와서 나를 면회소로 데려갔다.

누가 왔는가 하고 기다리노라니

판자벽에서 딸깍하고 주먹이 하나 드나들 만한 구멍이 열렸다.

그리로 내다보니 어머님이 서 계셨고 곁에 왜놈 간수가  지키고 섰다.


근 일고여덟 달 만에 면회하는 어머님은 태연하신 안색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경기감사나 한 것 보담 더 기쁘게 생각한다.

네 처와 화경이 까지 데리고 와서 면회를 청했는데

한 번에 한사람 밖에 허락하지 않는데서

네 처와 화경이는 저 밖에 있다.

우리 세 식구는 평안히 잘 있다.

옥중에서 몸이나 잘 있느냐?

우리 근심 말고 네 몸이나 잘 보중하기 바란다.

만일 식사가 부족하거든 하루에 사식 두 번을 들여 주랴 ?”


오랜만에 모자 상봉하니 나는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저같이 씩씩한 기질을 가지신 어머님께서 개 같은 원수 왜놈에게

자식 보여 달라고 청원하였다고 생각하니 황송한 마음이 그지없다.

다른 동지들의 면회 정황을 들어보면

부모처자가 와서 서로 대면하면 울기만하다가

간수의 제지로 말 한마디 못하였다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어머님은 참 놀랍다고 생각된다.

나는 17년 징역선고를 받고 돌아와서

잠은 전과 같이 잤어도 밥은 한 끼를 먹지 못한 적이 있는데

어머님은 어찌 저리 강인 하신가 탄복하였다.


나는 실로 말 한마디를 못하였다.

그러다 면회구가 닫히고 어머님께서 머리를 돌리시는 것만 보고

나도 끌려 감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이 나를 대하여서는 태연하셨으나

돌아서 나가실 때는 반드시 눈물에 발부리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이 면회 오실 때 아내와는 물론 많은 상의가 있었을 것이요,

내 친구들도 주의를 해 드렸을듯 하지만,

일단 만나면 울음을 참기가 지극히 어려울 것인데

어머님은 참으로 놀라운 어른이다.

* 일제는 1910년 12월 27일 압록강 철교 준공식에 참가하려는

사이또총독을 암살하려고 모의하였다는 혐의로

애국지사 600명을 검거, 투옥하였고 그중 105인을 기소하였다.

그리고 그중 6명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백범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 "백범일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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