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雨暗西池 춘우암서지
輕寒襲羅幕 경한습라막
愁倚小屛風 수의소병풍
墻頭杏花落 장두행화락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찬 바람이 장막 속 스며들 제
뜬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남자로 태어나지 못함을 한탄했다던 허난설헌의 서러움과 시적 화자의 고독한 정서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비 내리는 봄날의 나른함이 홀로 지내는 규방의 적막함에 더해져 서정적 화자의 고독한 정서를 극대화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앞 부분에서 공간적·시간적 배경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정적 화자의 정서를 부각시키는 한시의 일반적인 시상(詩想) 전개 방식을 보이고 있다.
시름에 겨워 병풍에 기대어 하루하루 시들어 가는 살구꽃을 바라보는 서정적 자아의 정서가 고독함과 함께 젊은 날의 세월을 보내는 아쉬움으로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서 규중 여인의 외로운 심정을 표현한 오언절구 한시로, 연못에 내리는 봄비와 살구꽃의 떨어짐을 배경으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의 외로움을 쓸쓸하게 표현하고 있다.
곡자(哭子) 今年喪愛子 금년상애자
哀哀廣陵土 애애광릉토
蕭蕭白楊風 소소백양풍
鬼火明松楸 귀화명송추
紙錢招汝魂 지전초여혼
玄酒存汝丘 현주존여구
應知第兄魂 응지제형혼
夜夜相追遊 야야상추유
縱有服中孩 종유복중해
安可糞長成 안가분장성
浪吟黃坮詞 낭음황대사
血泣悲呑聲 혈읍비탄성
이해와 감상 세상을 떠난 자식에 대한 피눈물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젊어서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고 난 후, 자식의 무덤 앞에서 그 슬픔을 곡진하게(자세하고 간곡하다)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감정 이입의 방법을 사용하여 자연물을 바탕으로 정서가 표출되고 있으며,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을 뱃속의 아기까지 거론하며 진솔하게 표출하고 있다.
마지막에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도다'라는 표현에서 자식을 잃은 어미의 응축된 슬픔의 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곡자에 대한 [평설]
- 손종섭 역 -
지정무문(至情無文)이라 한다.
지극히 가까운 정분의, 지극히 절박한 감정에서는 글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정의 아픔이야 실로 어떻다 하랴.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통곡을 삼키고 심서를 가다듬어, 이런 한편의 시를 이루었음이 우선 대견스럽다.
여기서는 몇 차례의 환운에 의한 압운이 되어 있을 뿐, 기타는 거의 배려되어 있지 않은 채, 조탁(彫琢)도 퇴고(推敲)도 안 거친 대로, 낙서하듯 그적거려 던져버린 것 같이 거칠다.
그것은 저 〔 비록 새 아길 가진다 한들 어찌 바라리 장성하기를〕 부분만 보아도 그렇다.
약간의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겠으나, 전체의 내용에는 도저히 조화될 수 없는 작대기감일 뿐이다.
어쩌면 시편을 정리하던 후인의 착종(錯綜)으로 딴 시에서 혼입(混入)된 연문(衍文: 문장 가운데 잘못 들어간 쓸데없는 말)이 아닌가고도 여겨질 만큼의 불협화음이다.
흐트러진 심사에서는 해조(諧調: 잘 조화됨)보다 오히려 난조가 제격으로, 독자의 심금을 또한 같은 난조로 뒤흔들어 놓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식없는 목소리여야 할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다.
끝구의 '황대사' 운운은, '내 황대사의 어미처럼 덕이 없고 사랑이 모자라, 제 자식을 스스로 연달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자책(自責)이요 자형(自刑)이다.
황대 아래 외 심으니
* 당 고종(高宗)의 아들이 여덟인데, 위로 넷은 천후(天后)의 소생이다. 둘째인 현(賢)을 태자로 세웠다.
이해와 감상
왜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현재의 남편(김성립)과 인연이 된 것을 후회하고,
去年喪愛女 거년상애녀
雙墳相對起 쌍분상대기
허난설헌이가 두 자식을 잃고 쓴 작품으로
사랑하는 딸지난해 잃고
귀여운 아들올해 여의어
슬프디 슬픈광주 땅에는
두 무덤 마주새로 생겼네.
백양나무 숲쓸쓸한 바람
도깨비불빛흐르는 묘지
지전 흔들어 너희 넋 불러
무술을 친다너희 무덤에
응당히 너희남매의 혼이
밤마다 서로좇아 놀려니 -
비록 새 아길가진다 한들
어찌 바라리장성하기를 -
하염없는 맘황대사 외며
피눈물 울어소리 삼켜라!
어린 두 자녀를 작금 양년 사이에 다 잃고 만,
고시체인지라 비록 엄격한 율격을 요하는 것은 아니나,
이 부분은 다음 구의 '황대사(黃臺詞)'의 전제로는
그런데도 이 시가 우리의 마음을 이처럼 크게 울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는 필경, 시란 형식이나 기교보다는 심충(深衷)에서 솟구쳐 오르는 그대로의
황대사는 다음과 같다.
주렁주렁 외가 익네.
첫 번째는 외 좋으라 외 따내고
두 번째는 아직 배다 솎아내고
세 번째는 맛이 좋다 또 따내고
네 번째는 덩굴채로 걷어 가네.
種瓜黃臺下 瓜熟子離離
一摘使瓜好 再摘令瓜稀
三摘尙云可 四摘抱蔓歸
맏인 홍(弘)을 태자로 삼았으나, 계후(繼后: 두 번째 왕비)가 시기하여 독살하게 되자,
그러나 현은 수심에 가득차 말이 없고,
이 노래를 지어 악공에 주어 부르게 하여,
상(임금)과 후(왕비)의 깨달음을 얻으려 했으나,
그도 결국 쫓겨나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출처: "옛 詩情(시정)을 더듬어:
한국(韓國)역대명한시(名漢詩)평설", 손종섭,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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