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유랑의 노하우’

아치울잡초 2012. 5. 30. 09:35

 

‘유랑의 노하우’

 

1862년 미국정부는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에 착수했다.

미개발의 벌판을 개척하는 난공사인데다 남북전쟁 때문에 진행이 더디었다.

완성된 것은 1869년 5월 10일이었다.

 

서부의 자연은 매우 거칠어서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까지는 아직 풍부했던 야생들소를 충분히 먹은 백인 노동자도,

튼튼한 근육을 가진 흑인노동자도 전염병으로 잇달아 쓰러졌다.

그러나 중국인 노동자들은 무슨 까닭인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일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인종과 출신지별로 캠프를 만들었다.

흑인과 백인들은 중국인 캠프를 지나갈때마다

그들이 어떤 마법을 부려 건강을 유지하는지

흥미진진하게 캠프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그 마법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런 마법은 없었던 것이다.

 

중국인의 선조는 수천년에 이르는 역사속에서를 광대한 국토를 이곳저곳 이동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민족적 경험으로서 ‘유랑의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중국인의 생활문화 자체가 타향땅에서도 건강을 보증하는 마법이었던 것이다.

 

중국인은 생수나 날것을 입에대지 않는다.

더운 여름날에도 탕과 차를 마시고 열을 가한 요리를 먹는다.

서양의학에서 명확하게 살균이라는 관념이 생긴 것은

1867년 리스터가 석회산에 의한 소독법을 제창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중국인은 수백년전부터 가열소독을 실천하고 있었다.

 

중국인의 민간의료도 유랑의 지혜가 집적된 것이었다.

한방약을 구할 수 없는 타향땅에서도 노동자들은 동료들끼리 모여

침을 경혈에 찌르거나 독특한 지압과 맛사지를 통해

돈 들이지 않고 근육통과 아픈곳을 치료했다.

 

중국인의 최대강점은 비밀결사나 상호조직 등의 네트워크를 잘 만든다는데에 있다.

중국 국내든 국외든 중국인 노동자가 혼자 몸으로 낯선 마을에 가도

동향인의 공동체에 뛰어들기만 하면

최저한의 생활이 보장되어 굶어죽을 염려는 없었다.

 

중국계 노동자보다 조금 늦게 일본인도 미국에 건너갔다.

그러나 중국인과 달리 유랑의 노하우를 갖지 못한 일본인 제1대는

비참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가토토루의 ‘貝의 中國人 羊의 中國人’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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