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회갑을 맞이한 우리 친구들을 위하여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부부를 함께 초대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금새 회갑이 되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天不生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
(천부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은 록없는 이를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키우지 않는다는 내용으로서,
즉 사람은 다 자기 밥그릇 차고 나오는 법이며
각기 다 세상에서의 역할이 따로 있는 귀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나의 역할을 찾아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오늘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여러분께서 마련해주신
이 잔칫상을 대할 수 있다고 여겨져서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제가 제 역할을 하는 동안
제 곁에서 아이들과 저의 투정을 받아내며 평생을 뒷바라지해온
저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잔치는 우리들의 환갑잔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동반자들이 주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예전 우리들의 선조 중에서 우리와 똑같은 마음으로 아내에게 시를 바친
추사 김정희선생의 이야기를 잠시 전하고자 합니다.
추사는 25세에 중국에 다녀오면서 신학문과 신예술의 선두주자로서
4~50대까지 주요 관직에서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그러나 54세때 벼슬은 형조참판(지금의 법무부 차관)에 이르렀으나
정변이 일어나 모든걸 잃고 역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당시 영의정 조인영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채 제주도로 귀양을 가서
9년의 귀양살이를 합니다.
물론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면서 누구보다 외로운 환갑을 보냈습니다.
더우기 귀양살이 3년 만에 한양에 두고온 아내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귀양을 오지 않았으면 죽은 아내 부둥켜안고 싫건 울어버릴 수도 있지만
천리길 떨어져 있는 몸이라 어쩌지 못하고 아내 사랑하는 마음을 시로서 표현합니다.
바로 “배소만처상”이란 시입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배여있는 이 시를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아내, 안주인님들께 바치고자 합니다.
인간세계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준다는 월하노인(月下老人)에게 애원하여
다음 세상에서는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추사 자신이 아내가 되고 부인은 천리 밖에 유배된 남편의 처지가 된다면
지금 추사의 슬픔과 비통함을 이해할 것이라는
극진한 비애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配所輓妻喪(배소만처상) 秋史 金正喜
聊將月老訴冥府 (료장월노소명부)
來世夫妻易地位 (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
使君知有此心悲 (사군지유차심비)
월하노인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오늘 그동안 잘 보관하고 있던 발렌타인 30년산을 가져왔습니다.
이 술을 한잔씩 마시면 앞으로 30년은 끄떡없으니까 90세까지 부부해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술 사양마시고 한잔씩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30년동안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기도문“
건강을 주소서 !
그러나 내 삶과 생활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말게 하소서 !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하시고
그리고 햇살 좋은 날 며칠쯤은
그 계절을 완전히, 그리고 색다르게 느끼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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