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세상잡사

단풍과 티핑포인트

아치울잡초 2006. 9. 25. 14:27

가을의 속도 : 단풍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자신만의 “감성 바이러스”를 만들어라!  그리고 퍼트려라

 

 

 

   '가을의 속도'를 느껴본 일이 있는가? 가을은 단풍과 함께 온다. 바로 그 단풍이야말로 가을의 속도를 재는 바로미터다. 단풍은 어느 날 문득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점령군과 같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머지않아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는 그 순간 어김없이 가을이 다가와 붉게 물든 단풍잎으로 손짓하고 노랗게 물오른 은행나무 잎이 아스팔트거리를 점령하듯 뒤덮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가을의 속도를 체감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단풍은 대개 9월말 즈음 설악산과 오대산의 산머리에서 시작된다. 단풍은 밑에서 위로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물든다. 단풍은 산머리 쪽에서 산아래 쪽으로는 하루 40미터씩, 북쪽에서 남쪽으로는 하루 25킬로미터씩 소리 없이 이동한다. 이것이 '가을의 속도'다. 그리고 마침내 이 단풍물결은 11월 초순에 남해안의 두륜산과 바다 건너 제주도 한라산까지 뻗어 간다.

 

   신이 거대한 렌즈를 지닌 카메라로 단풍이 드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찍는다면 그것은 마치 시험관에 담가놓은 리트머스 시험지가 물드는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소리 없이 퍼져 가는 단풍은 일종의 자연 생태적 전염현상이다. 그것은 어제 저녁까지 파랗던 나뭇잎이 다음날 아침이면 붉게 물든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신기한 색감의 전염이다.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색감의 바이러스'를 살포하며 점령군같이 다가오는 것, 그것이 단풍이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와 산과 들 심지어 도시의 아스팔트 위까지 뒤덮는 단풍이야말로 자연세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할만하다.

 

    '티핑 포인트'란 소리 소문 없이 전염되고 확산되어 극적인 변화상황이 연출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본래 '티핑 포인트'란 지난 70년대에 미국 북동부의 도시에 살던 백인들이 잠식 해 들어오는 흑인들을 피해 어느 순간 갑자기 교외지역으로 탈주하던 현상을 가리키던 도시인구사회학의 용어였다. 도시사회학과 인구사회학자들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 이주해오는 아프리카 계 흑인들의 숫자가 그 지역 민의 20%를 넘게되면 그 시점에서 거짓말같이 거의 모든 백인들이 한 순간에 그 지역을 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티핑 포인트'는 더 이상 인구사회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경제심리학적인 용어로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즉 시장에 어떤 아이디어나 상품이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어와 순식간에 시장을 압도하고 석권하는 양태를 우리는 '티핑 포인트'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티핑 포인트'는 단풍을 닮았다. 시장에서의 '티핑 포인트'의 출현양상은 마치 자연세계에서의 단풍의 확산과 유사하다. 단풍과 마찬가지로 '티핑 포인트'도 일종의 전염현상인 셈이다. 단풍이 대자연에서의 색감 바이러스(virus of color)의 전염현상이라고 한다면 '티핑 포인트'는 시장에서의 감성 바이러스(virus of sense)의 전염현상이다.

 

    우리는 허시파피 신발을 알고 있다. 허시파피 브랜드는 한 때 거의 사장되어 있었다. 연간 판매량은 3만 켤레로 떨어졌고 그나마도 산간벽지의 아울렛 매장이나 작은 마을의 허름한 가게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행이 한물갔다고 판단되었던 허시파피는 1995년 한해동안 43만 켤레나 팔렸고 그 다음해에는 매상이 자그마치 전년 대비 4배나 늘었다. 허시파피를 만든 울버린회사는 애당초 이 신발을 단계적으로 처분할 생각이었고 그 당시 재고 판촉과 관련해 거의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한물간 허시파피가 뉴욕 맨해튼 도심의 클럽과 술집 그리고 디자이너들에 의해 다시 신켜지게 되었지만 아무도 허시파피의 판매량을 촉진시킬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허시파피를 신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아무도 더 이상 이 신발을 신으려 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라는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였다. 여하튼 한물간 허시파피 브랜드는 단풍이 점령군처럼 색감 바이러스를 흩뿌리며 번져가듯이 전혀 예상치 못한 감성 바이러스 덕택에 뜻밖의 대박이 터지는 '티핑 포인트'를 맞았던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단순히 허시파피를 사서 신은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허시파피라는 브랜드에 잠재해 있던 감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는 감성 바이러스가 잠재되어 떠돌고 우리는 감기에 걸리듯 그 감성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감염되기 십상이다. 자, 그러니 당신도 '티핑 포인트'의 주인공이 되고 싶거든 스스로 자기만의 감성 바이러스를 만들어보라.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아이디어에 담고, 자기 상품에 담아 퍼뜨려보라. 그러면 당신도 '티핑 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이 글 안에 숨겨진 '정진홍 바이러스'에 이미 감염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기상학자들은 전지역의 30% 이상이 물들어야 본격적인 단풍 철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단풍은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때 보다 기온이 서서히 낮아질 때 더욱 아름답게 물든다고 한다.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찾아올 점령군 같은 단풍을 맞으며 그 야릇한 '가을의 속도' 속에서 스스로 '티핑 포인트'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꿔보면 어떨까.

 

 

 

                     (鄭 鎭 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디지털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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