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좋지않다라는 것은 도덕경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훈
일상생활에서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쉽고 쓸데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주기 쉽다
"신사는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법"
不言之敎
말은 체험의 영역이지 사변적으로 따지거나 논리적으로 캐내려는 지적 노력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구태여 말을 한다면 말할수 없음에 대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덕경에서 성인은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가르친다고 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하늘과 땅이 합하여 온갖일을 이루어 내지만 요란스럽게 떠들며하지 않는다.
별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하는 등 대자연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런 것을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도 논어에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사철이 순리대로 바뀌고 만물이 생겨나지만 하늘이 무슨말을 하는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결국 제2단계의 의식을 활용하며 산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느정도 필요한 단계지만 최상의 상태는 아닌 것이다.
말장난 정치, 말장난 학문등도 경계해야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불가결한 합리적인 사고와 조리 정연한 말일지라도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동양의 오행, 오복, 오색, 오음(궁상각치우)의 “오”개념은 다섯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 모든색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바쳐 좀 더 보기 좋은 것, 좀 더 듣기 좋은 것, 좀 더 맛있는 것, 좀 더 재미나는 것, 좀 더 수지 맞는 것을 추구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다.
정신없이 추구하다 못해 이젠 괴상한 모양, 괴상한 맛, 괴상한 짓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이런 세상적 가치가 최고가치로 군림하게 되어 우리는 그 앞에 무릎꿇고 경배하며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즐거움이 우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런 것을 섬기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만다.
이렇게 될 때 모든 색깔의 근원, 모든 소리의 근원 등 모든 실재 가치의 근원이 되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에 우리의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다.
그러므로 참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감각적 가치를 떠받드는 일 대신에 내면적이고 원초적인 내실을 우선 가치 추구해야 할 것이다.
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 입니다.)
우리 앞에 찻잔이 있으면 우리는 그 찻잔의 모양, 무늬, 재료 등에 그 신경을 쓸뿐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에 찻잔이 찻잔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일쑤다.
집도 사람이 들어가 살수 있거나 물건을 들여 놓을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집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음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음악도 음과 음사이 공간이 있어야 음악이 음악으로 성립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어깨에 닿을 때 느낄수 있음은 떨어져 있음이 가능해야 비로서 닿음을 느낄수 있다는 사실은 별로 생각치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의 미와 절제의 미
있음의 세계 존재의 세계를 보라
그리고 없음의 세계와 비존재의 세계를 느낄수 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다.
표현함과 묻어둠의 차이
1. 남녘 부부의 일상 그리고 죽음
2. 철새와 등대
철새의 방향감각과 등대의 역할
새들이 태양의 기울기를 감지해서 방향을 잡는다는 설과 새들이 지구의 磁場을 느끼면서 정확히 목적지를 향 해 날아간다는 설
항해술은 선박조정술, 기상학, 적하술이 주요 근간이라지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일이 가장 중요하다. 대양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못해 항로를 이탈하면 목적지로 갈 수 없다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아는 힘으로 나아간다.
동서남북이란, 나침반이란 무엇인가?
나는 너의 존재와 너의 위치에 의해서 나 자신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다.
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거점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다.
선박은 3차원의 공간속에서 상대적인 존재로 인식할 때 목적지를 향해갈 수 있다.
등대는 선박에게 항로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단지 저마다 독자적인 신호체계만 갖고 있을뿐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신호가 가장 아름답다.
- 등대에는 풍향계가 돌아간다. 너무 빨라 도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고 풍속에 따라 거울같은 바다가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건들바람, 흔들바람으로 계속되며 싹쓸바람으로 끝난다.
3. 담양 瀟灑園
(양산보가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남곤, 홍경주)
비오는날 대숲을 지나면 속삭임이
계곡등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정원을, 정자를 앉힘
매화, 벚꽃, 산수유 그리고 대나무 숲으로 입구
4. <南冥 曺植>
경상 좌퇴계 우남명 1500년생
남명 조식(南冥 曺植)은 조선조(朝鮮朝) 연산군(燕山君) 7년(1501) 경남 합천군 삼가면 토동에서 태어났다. 본가(本家)는 삼가판현(三嘉板峴)에 있었고, 토동(兎洞 )은 선생의 외가(外家)다. 선생의 자는 건중(楗仲)이요, 호(號)는 남명(南冥)이다.
5세 때까지 외가(外家)에서 자라던 선생은 아버지가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로 이사해 정신력(精神力)과 담력(膽力)을 기르느라 두 손에 물그릇을 받쳐들고 밤을 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한 의기(意氣)는 18세 때 서울로 돌아와 성수침(成守琛)과 성운(成運) 종형제(從兄弟)를 만남으로써 이왕의 짙었던 속기(俗氣)를 떨쳐 버리고 보다 높고 넓고 깊은 인생(人生)의 경지(境地)를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유서외(儒書外)에 노장(老莊)과 불서(佛書)를 섭렵하기도 하였다.
20세에 생원 진사 양과(生員 進士 兩科)에 일, 이등으로 급제(及第)했다. 남명(南冥)은 좌류문(左柳文)을 좋아하고 고문(古文) 에 능하여 시문(時文)이 아닌 고문(古文)으로 시권(詩卷)을 써서 시관(試官)들을 놀라게 하고 그 글은 사람들이 전송(傳誦)하기 까지 하였다.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가 죽고 숙부(叔父)인 언경가(彦慶家)가 멸문(滅門)의 화(禍)를 입자 이를 슬퍼하고 시국(時局)을 한탄한 선생은 벼슬을 단념하게 되었다.
26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고향(故鄕)인 삼가(三嘉)에 장사지내고 삼년려묘생활(三年廬墓生活)을
30세 때 처가(妻家)가 있는 김해(金海)에 이사하여 거기에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안정(安靜)된 공부(工夫)에 들어가니 태산(泰 山)에 올라 사해(四海)를 바라보는 기상(氣像)을 길렀고 한사존성(閑邪存誠), 악립연충(岳立淵沖)하는 학문(學問)과 인격(人格) 을 닦았다. 여기에 성대곡(成大谷), 이청향당(李淸香堂), 이황강(李黃江), 신송계(申松溪)등 명류(名流)들이 모여들어 기묘사화 이후(己卯士禍以後) 퇴상(頹喪)했던 사기(士氣)를 응집(凝集), 재기(再起)를 도모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되었다.
48세 때 18 년간 학문기반(學問基盤)을 닦던 김해(金海)를 떠나 다시 고향(故鄕)인 토동(兎洞)에 돌아와 계부당(鷄伏堂)과 뇌룡 정(雷龍亭)을 짓고 한편으로는 후진(後進)을 가르치고, 한편으로는 처사(處士)로서 언론(言論)을 발(發)하여 국정(國政)을 비판( 批判)하였다.
김해(金海)에서의 18년 생활(生活)은 급기야 사림(士林)의 기풍(氣風)을 다시 진작(振作)하는 힘이 되어 사림(士林 )은 그를 영수(領首)로 추앙(推仰)하기 시작했고, 이를 안 조정(朝廷)은 그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그를 벼슬길로 나오도록 했으 나 모두 사퇴했던 것이다.
이 때 선생의 학문(學問)과 인격(人格), 그리고 사상(思想)과 정신(精神)은 널리 알려져서 오덕계(吳德溪), 정래암(鄭來庵), 노 옥계(盧玉溪)같은 기성학자(旣成學者)들이 문하(門下)에 들어와 사림(士林)의 종사(宗師)로 추대(推戴)되었다, 특히 여기서 올 린 이른바 단성소(丹城疎)가 조정을 놀라게 하고 사림(士林)을 용동(聳動)케 하자 선생의 명망(名望)은 극치(極致)를 이루었다. 벽립천인(壁立千 )이니, 태산교악(泰山喬嶽)이니, 추상열일(秋霜烈日)이니 부시일세(俯視一世)니하여 선생의 선비로서의 기상(氣 像)을 사람들이 추앙(推仰)하고 경도(傾倒)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뇌룡정(雷龍亭)에 있던 시대다. 선생의 학덕(學德)이 더욱 익 어가고 명망(名望)이 더욱 높아지자 조정(朝廷)에서는 더욱 예우(禮遇)를 하고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하여 선비의 고고(孤高 )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61세가 되자 선생 일생(一生)의 마지막 도장(道場)으로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을 바라보는 덕산(德山)의 사윤동(絲綸洞) 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60년 동안 갈고 닦고 쌓아올린 자신의 학문(學問)과 도덕(道德)과 인격(人格)과 정신(精神), 사상(思 想)을 후세(後世)에 전(傳)하기 위해 많은 영재(英才)들을 모아 가르쳤다.
과연 선생의 일생(一生)은 이 산천재(山天齋)에서의 만년(晩年 61~72)을 잘 장식함으로써 우리나라 선비로서는 최고(最高), 최 선(最善)의 전형(典型)이 되었다. 그것은 여기서 길러진 학생(學生)들이 조선(朝鮮) 선조시대(宣祖時代)의 정치(政治), 학술계( 學術界)를 움직이는 주역(主役)이 되었고,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當)하여 의병(義兵)을 일으켜 항왜토적(抗倭討敵)한 절 의지사(節義之士)들이 대부분 선생 문하(門下)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66세에 징사(徵士)로서 포의(布衣)로 왕(王)과 독대(獨對)하여 치국지방(治國之方)과 학문지요(學問之要)를 말했다. 선조(宣祖) 가 등극(登極)하자 여러번 소명(召命)했으나 가지 안고, 헌책(獻策)을 진언(陳言)했으나, 조정(朝廷)의 호현(好賢)은 허명(虛名) 일 뿐, 반영(反映)되지 않아 속히 헌책(獻策)을 실행해 줄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71세 때의 일이요, 국정(國政)에 대 한 마지막 발언(發言)이었다.
72세(1572)되던해 2월 8일 천수(天壽)를 다하고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시천면(矢川面) 사윤동(絲綸洞)에서 조용히 운명(殞 命)하였다. 운명 전
문병(問病) 온 노옥계(盧玉溪),
-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生前欲殺之 死後方稱美
-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 請看千石鐘 非大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 春山底處無芳草 只愛天王近在居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有餘
<李珥栗谷> 功臣에게 祿은주되 職은 주지마라
“無鑑於水鑑於人”
“學如逆水行舟 不進則退”
* 우리시대 三年 侍墓 : 유범수 선생 (충남 아산)
5. 1972년 닉슨이 모택동선물 “楚辭”
<屈原 離騷 漁夫辭>
- 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탁족세심)
- 新沐者必彈冠新浴者必振衣
<5월 단오> 미라수江 용선경주 수리취라는 둥근 절편
※후진타오가 빌게이츠 초청으로 워싱턴주 시애틀
빌게이츠저택을 방문 환대를 받고 7000억원 MS제품
백악관에서 부시대통령에게“손자병법”책자 선물
“不戰而屈” 싸우지 않는게 이기는 법 不戰=全勝
6. 大巧若拙 丹漆無文
찻잔의 의미
- 비어있어야 담을 수 있다
指月과 直指
- 달을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봄
實在와 非實在
-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7. 봄의 꽃
- 오동도의 통영의 동백 - (고창 선운사)
- 지리산이 잠겨있는 섬진강 하구의 재첩잡이
- 광양 야산에 피어있는 매화군락
남의집에 핀 매화 보구 즐기면 됐지
- 하동의 장터와 쌍계사 벚꽃
一片花飛減却春 風飄萬點正愁人
且看欲盡花徑眼 莫厭傷多酒入脣
江上小堂巢翡翠 苑邊高冢臥麒麟
細推物理須行樂 何用浮榮絆且身
曲江2首 杜甫
- 구례의 산수유 와 목련의 일생
하루 30키로를 올라오는 봄철 꽃
巧拙憂賢相是非 何如一醉盡忘機
君知天地中寬窄 鷗鶚鸞凰各自飛
對酒7首 白樂天
8. 김병연(1506년생)
- 1811년 (순조11년) 홍경래의 亂
- 嘉山군수 鄭蓍의 활약
- 宣川防禦使 金益淳(조부)의 실수
- 滅族에서 廢族으로 감경
- 모친 함평李氏 여주에서 영월로...
- 영월군수 백일장
“論 鄭嘉山忠節死 嘆 金益淳 罪通于天”
- 安東(壯洞)김씨 :제사때 祝文은 處事로
書爲白髮劍斜陽 天地無窮一恨長
痛飮長安紅十斗 秋風蓑笠入金剛
入金剛 김립
難避花
靑春抱妓千金芥 白日當樽萬事空
鴻飛遠天易隨水 첩過靑山難避花
愛酒歌 金炳淵(金笠)
渴時一滴如甘露 醉後添盃无不知
酒不醉人人自醉 色不迷人人自迷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卿且去 明朝有意抱琴來
山中如幽人對酌 李白
9. 손자병법 “박재희교수” 수강
60년에서 80년을 산다고 하는 솔개
솔개는 40년 정도를 살면 솔개의 부리, 깃털, 발톱이 다 상해서 사냥을 하기가 어려워 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두 종류의 솔개를 보게되는데 한 종류는 이제 사냥을 멈추고 죽은 동물만 먹는 경우 다른 종류는 높은 산 절벽이 있는 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몇일이고 자신의 부리로 돌을 쪼아 댄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투성이가 되는데 그래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부리가 다 부러져서 없어질 때까지 쪼아댑니다.
그렇게 다 쪼아서 부리가 다 부서지고 피투성이가 된 솔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몇일을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부리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새 부리가 생겨나면 자신의 발톱을 다시 쪼아서 다 뽑아낸다고 합니다.
그리곤 자신의 깃털도 마찬 가지로 뽑아낸다고 합니다.
1.實力(智)
格物致知(山戰水戰,澤戰까지)
⇒ 현장을 읽어내는 안목
2. 所信(信)
知彼知己百戰不殆
⇒ 相生 마인드
3. 人格(仁)
⇒ 脣亡齒寒(히딩크와 박지성)
1년간 적응못함, 한결같이 밀어줌
80억받고 맨유에 넘김
제일 좋은 일을 제일 먼저 알린다
4. 勇氣(勇)
⇒ 솔선수범의 열정
5. 嚴格(嚴)
⇒ 公私區別 (泣斬馬謖)
<李珥栗谷> 功臣에게 祿은주되 職은 주지마라
□ Vision(꿈)의 공유
- 꿈이 같은가? ⇒ 上下同欲者勝
- 萬人의 꿈은 이미 꿈이 아니다 (칭키스칸)
이미 現實이다
走爲上計(zou wei shang ji)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 戰勝不復
兵形上水 (bing xing shang shui)
⇒ 柔軟 (水無常形) 守株待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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