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歸園田居 (其一)
소무적속운 성본애구산 少無適俗韻, 性本愛丘山.
오락진망중 일거삼십년 誤落塵網中, 一去三十年.
기조연구림 지어사고연 羈鳥戀舊林, 池魚思故淵.
개황남야제 수졸귀전원 開荒南野際, 守拙歸園田.
방택십여묘 초옥팔구간 방宅十餘畝, 草屋八九間.
유류음후첨 도리나당전 楡柳蔭後簷, 桃李羅堂前.
애애원인촌 의의허리연 曖曖遠人村, 依依墟里煙.
구체심항중 계명상수전 狗吠深巷中, 鷄鳴桑樹顚.
호정무진잡 허실유여한 戶庭無塵雜, 虛室有餘閒.
구재번롱리 부득반자연 久在樊籠裏, 復得返自然.
2. 歸園田居 (其三)
종두남산하 초성두묘희 種豆南山下, 草盛豆苗稀.
신흥리황예 대월하서귀 晨興理荒穢, 帶月荷鋤歸.
도협초목장 석로점아의 道狹草木長, 夕露霑我衣.
의점부족석 단사원무위 衣霑不足惜, 但使願無違.
3. 歸園田居 (其五)
창한독책환 기구력진곡 悵恨獨策還, 崎嶇歷榛曲.
산간청차천 가이탁오족 山潤淸且淺, 可以濯吾足.
록아신숙주 척계초근국 漉我新熟酒, 隻鷄招近局.
일입실중암 형신대명촉 日入室中暗, 荊薪大明燭.
환래고석단 이부지천욱 歡來苦夕短, 已復至天旭.
<해설>
도연명의 시에 田園詩적인 요소가 많이 있으며 그것이 도연명 시의 기조를 이루고 있음은 자명하다.
여러차례 出仕와 歸田의 반복속에서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도연명은 전원이 최후의 안식처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도연명 시를 일괄하여 전원시라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의 시에는 전원시 계열의 작품보다는 詠懷詩 계열의 작품이 더 많으며 전원시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도연명 五言詩의 주요한 특징은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에 있으면서 오히려 현실의 상황을 외면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理想이나 역사인물,神話, 전설 등을 통하여 현실을 평가하고 부정하였다.
그는 부패가 극심했던 암울한 시대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편으로 전원으로 돌아가 몸소 농사를 지었던 실천적인 시인이었다. 그는 자연과 속세를 대비시키고 전원과 벼슬길을 대비시키면서 전원생활을 노래하였는데, 이러한 시의 경향은 자신이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상한 품성과 현실에 대한 혐오를 유감없이 나타낼 수 있었다.
中國詩史에 있어서 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는 그리 많지 않다. 일찍이 <詩經>에 생활을 노래한 시가 더러 있기는 하나 본격적인 田園詩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연명의 전원시는 詩經의 노동적인 경향을 계승하고 여기에 자연에 대한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접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自然詩人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원시는 자연시 중에서도 전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점하며 전원의 아름다움에 국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전원시는 그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그 원류는 詩經 속에서 그 싻이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전원시가 도연명에 이르러 확립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東晉 무렵의 시인들이 玄言詩로부터 해방되어 공허한 노장사상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자연과 사물을 묘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山水詩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원시도 이 산수시와 정신면에서 의미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도연명 자신의 인생과정에 있어서 유가적인 이상을 품고 벼슬길로 나아갔던 도연명이 결국 전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암울했던 사회적인 여건하에서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요한 테에마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섯 번의 벼슬살이가 도연명 내심의 모순이라기 보다는 의식의 구체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전원을 그리는 그의 결심이 구체화 된 것으로 그러한 현실 인식을 통하여 전원시 창작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歸園田居>시는 작자가 완전히 전원으로 돌아온 다음 해에 지은 작품으로 전원시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5언시의 대표작이라고 할만 하다.
도연명의 시를 논하면 보통 술과 국화를 언급하게 되는데, 이러한 연상이 형성되게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찍이 梁의 소명태자는 도연명의 시에는 항상 술마시는 예기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듯이 도연명과 술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겠다.
도연명에 앞서 竹林七賢이라 칭해지는 문인들이 술과 문학을 결부시켰는데, 이들의 음주는 어지러운 세상을 잊고 자기의 한 몸이나 잘 보전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퇴폐적인 음주 뒤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저주하는 문인들의 저주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도연명은 세상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 술을 마신 것은 아니다. 그는 술을 통하여 인간의 속세에 대한 욕망이나 감정을 달래면서 자연과 합치되는 참된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도연명은 자아를 표출시키는 방법으로 그의 작품 속에 자신을 비유한 소재를 설정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소재가 국화였다.
국화는 옛부터 傲霜孤節의 품격을 지닌 것으로 비유되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는 때에 그 찬기운 속에서 피어나는 국화는
靑松과 더불어 굳은 절개를 지닌 군자로 상징되는 것이다.
그리고 술과 국화의 조화는 속세의 근심을 덜어주는 술에 국화를 띠워서 마시는 일은
無病長壽를 가능하게 한다고 알려져 왔다.
따라서 만약 술이 없다면 국화는 공연히 혼자 피어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九日閑居> 시 가운데 “塵爵恥虛罍, 寒華徒自榮”(먼지 묻은 잔 술통에 술 없음을 부끄러워 하고, 국화는 공현히 저 혼자 성할 뿐이네)에서 국화는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고 있는 도연명 자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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