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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라는 책과 황대권

아치울잡초 2006. 11. 10. 17:30

'야생초 편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곧잘 간첩으로 몰아고문하고 감금했던 정치의 희생자 가운데 한분인 저자는13년 2개월간 수감되었던 감옥에서 야생초를 만납니다.
어디서나 정해진 계절에 피어나 그의 소중한 벗이 되어준 야생풀들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글로 전했고 한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목숨같은 자유가 없는 감옥에서 야생초들의 잎 모양, 가지 모양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낸 이책은 단순한 풀꽃의 모양만 전한게 아니라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과사람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희망에 가득찬 서른살의 유학생은 청춘을 모두 무고하게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만 그 암울한 감옥 안에서 백여가지의 야생초를 돌보는 뜰을 마련하며 거미. 사마귀.그리고 청개구리와 감방 동료들 사이에서 그 들풀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관지염을 치료하기 위해 야생초를 뜯어먹다 보니 야생초의 생태와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고 그리고 책으로 까지 출간된 그 귀한 생각은 우리의 환경 어느 하나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환경과 생태계의 소중함을 말하기도합니다.

 

감옥과 같은 암울한 삶의 현장이지만 그곳에서 성서를 몇번씩이나 읽고 쓰며 주님을 새롭게 만난 분들도 있고,
날마다 야생초 편지를 쓴 작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상황을 더 깊이 성찰하며 이토록 아름답고 귀한 글을 낼수도 있다는 사실은 결국 그 부정적인 감옥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
한 평짜리 감옥에 혼자 앉아 우주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그 감옥에 갇힌 사람이 아닐것입니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반복되는 삶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을 생각하고 애정을 다해 살아간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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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겪은 웃기는 얘기 하나.
운동 끝나고 들어오는 길에 내가 봄에 운동장 구석에 심어 놓은 컴프리 잎을 두 장 따 가지고 들어왔단다.

컴프리 잎의 즙이 근육과 힘줄을 풀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거든. 방에 들어와서 밥그릇에 넣고 열심히 짓찧어 즙을 내었지.

짓이긴 잎과 즙을 조심스럽게 떠서 다친 손가락 위에 놓고 비닐로 잘 감쌌지. 풀어지지 않도록 실로 단단히 묶고는 컴프리즙의 기적적인 효력을 상상하며 바울로의 고백이란 책을 읽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물건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치료도 안 한 넷째 손가락이 굽어지지가 않는 거야.

이상하다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이런 멍청하게도 다친 넷째 손가락을 놔두고 멀쩡한 가운뎃 손가락을 치료한 거야.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풀어서는 제대로 처치를 했지.

그러고 보니 혹 병원에서 이와 유사한 사고가 일어나는 게 이해가 가더라구. 마침 어제 코리아 헤럴드의 앤 랜더즈 칼럼에도 비슷한 얘기가 실렸더라구.

한 다리 수술 환자가 의사의 실수를 염려한 나머지 수술 직전 마취에 들어가기 전에 매직펜으로 자신의 멀쩡한 다리에다 "칼 대지 마시오. 아픈 다리는 이 다리가 아닙니다!"라고 써 놓았다나. 그러면서 수술 받는 환자들에게 이 방법을 써 보라고 권고하고 있더라고. 조크치고는 꽤 심각한 조크지?

감옥안이라는 숨막힐 것 같은 공간에서, 오히려 숨막히는 도시를 향해 아파하는 여유...

예전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읽었을 때, 내 자신의 부끄러움에 고개를 끄덕이며, 참 아름다운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이번 책도 감옥에서 써 내려간 편지입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지만, 황대권이란 분의 인품이랄까? 그분의 겸양스런 삶의 자세 앞에 숙연해지는 기분입니다.

이 분이 쓰신 시 한편~

사람을 생긴 그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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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야생초 편지』저자 황대권 씨의 메시지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되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3년 2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황대권입니다.

악명 높은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관들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붙들려 갔을 때 부끄럽게도 저는 국가보안법이 무엇인지 고문이 어떤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면서생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선량한 일반국민과 국가보안법이 무슨 상관이 있냐는 주장에 대해 틀린 말은 아니지 하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동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의도 벌판의 찬 바닥에서 결사의 각오로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진짜 빨갱이가 아니고서야 사는데 아무 지장도 없는 보안법 문제를 가지고 저토록 극렬투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몸서리를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저런 사람들이 설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은 절대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남산 안기부 지하실로 불법 연행되어 전신을 발가벗긴 채 무려 60일 간이나 말로만 들었던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다 당해야만 했습니다.

저지르지도 않은 간첩죄를 시인하라고 해서입니다. 지금도 제 몸에는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아니 제 몸뿐이 아니라 고문의 그 끔찍한 기억은 죽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련하게도 더 이상 고문을 말아달라고 수사관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들은 한 인간을, 한 인격을 무참히 짓밟고 나서는 다시는 이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영원히 독방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자기들이 한 짓이 알려질까 두려웠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니 놀랍게도 저처럼 간첩으로 조작되어 장기 징역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독재권력의 이면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독재권력이 어떻게 유지되고 거기에 빌붙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배를 채우는지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얘기하는 ‘말없는 다수’는 단지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의 정치적 볼모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고 나서야 세상에 나온 저는 석방의 기쁨도 채 누리기도 전에 ‘보안관찰법’이라는 괴상한 법에 의해 다시 감옥 아닌 감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살고 나온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족쇄였던 것입니다.

제가 겪은 일에 대해 어디에서고 입도 벙긋하지 말고 죽은 듯이 지내라는 요구입니다.

이것이 수천 명의 목숨을 희생하여 얻은 민주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저를 더욱 슬프게 했던 것은 독재시절에 국민들에게 심어놓았던 맹목적인 증오의 철학과 대결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의식을 심어놓은 당사자들이 야당이 됨으로써 더욱 격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남북관계와 세계정세는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데, 고문과 조작의 피해자들이 아직도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사회의 뒤안길에서 제 가슴을 치고 있는데 저들은 이미 오래전에 국제사회로부터 반인권법으로 낙인이 찍힌 국가보안법을 마치 금과옥조인양 사수해야 한다고 정치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안기부 지하실에서, 그리고 교도소 철창 안에서,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자들과 그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프랑스의 전제 군주 루이 14세가 했다는 “짐이 곧 국가”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는 일부 권력집단과 그에 동조하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 아주 상식적인 일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곧 국가를 위한 일이다. 만약 너희들이 국가가 절대선임을 인정한다면 나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토도 달지 말아라

.” 비이성과 무논리의 극치입니다.

 

이런 잣대를 들이대면 자기와 다른 사람들은 언제든 빨갱이나 반역자, 간첩이 되어 버립니다. 얼마 전에 겪은 국회 안에서의 간첩소동은 지난 50년 동안 무수히 보아온 희극적인 비극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이 몰상식과 야만의 근저에 국가보안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나라의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아닙니다.

안보는 국민들의 건전한 양식이 지키는 것이지 일개 법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법으로써 국가 안보가 튼튼해진다면 저는 국가보안법 같은 것을 10개 더 만들자고 주장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의 사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무언가 사술에 걸려있거나 아니면 언제든 권력의 도구로 쓰고자 하는 흑심을 품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겨울철 내내 내복을 입고 지낸 사람은 봄이 와도 옷을 벗을 줄 모릅니다.

기온의 변화와 상관없이 이미 내복과 자기 몸이 하나가 되어 있어 그것을 벗어버리면 벌거벗는 줄로 착각합니다.

아직 분단 상황은 계속되고 있지만 계절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분단을 핑계로 낡은 법률을 붙들고 있어서는 변해가는 세상에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합니다.

내복을 벗어버리고 변해버린 날씨에 새로 적응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되어야 합니다.

2004년 12월 27일 새벽에

황 대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