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금이란
가야금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가야곡의 가실왕(嘉實王)이 당의 악기를 보고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고」라 는 현악기를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
( 경주시 황남동(皇南洞) 경내 폐고분(廢古墳)에서 발굴된 토기(土器) 장경호(長頸壺)의 목 부분에는 가야금의 주악도(奏樂圖)가 새겨진 것에서 볼 수 있는데 이 토기를 미추왕릉(味鄒王陵 : 262~283)으로 추정 한다면, 가야금의 역사는 더 오랜 고대로 소급할 수 있다.)
가야국의 우륵(于勒)에 의하여 가야금 음악이 발전되었고, 가야국이 망하니 신라로 망명하여(550년), 신라의 진흥왕(眞興王)의 아낌을 받아 국원(國原 - 충주)에서 계고(階古)에게 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 노래를, 만덕(萬德)에게 춤을 가르쳤다.
이 후로 가야금은 널리 퍼졌고, 일본에도, 전하여 시라기고도 라는 이름으로 나라의 정창원(正倉院)에 전하고 있다.
신라 시대의 토우(土偶) 가야금과 신라 때 일본에 전해진 나라 정창원(正倉院)에 있는 시라기고도의 특징은 봉미(鳳尾) 끝에 부들을 매는 양이두(羊耳頭)의 모양에 있다.
따라서,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체소한 가야금는 최근에 와서 바뀌어진 것이다.
1. 가야금의 종류
[1] 풍류 가야금(정악 가야금 혹은 법금)
풍류 가야금은 가야금의 원래 모습으로 알려져 있으며, 6세기 경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가야국이 망하자 가야국의 악사 우륵이 신라에 망명하여 그 음악을 전한 이후 가야금은 오늘 날 까지 계승되고 있다.
일본 나라 정창원에 전해져오는 신라금과 경주부근에서 발견된 토우는 현재의 풍류 가야금과 같은 것이다.
풍류 가야금은 통오동판의 뒷면을 넓게 파내어 울림통을 크게 만들며 가야금의 끝부분을 양의 귀를 닮았다는 양이두의 모양으로 장식한다. 풍류 가야금은 영산회상이나 도드리, 보허자, 가곡 반주 등 주로 실내악이나 합주로 연주되는 음악과 가락이 복잡하지 않고 속도가 느린 음악의 연주에 많이 쓰여 왔다.
요즈음은 창작곡의 연주에 풍류 가야금과 산조 가야금을 함께 편성하여 가야금의 음역을 저음부와 고음부로 넓히고 있기도 하다.
[2] 산조 가야금
구한 말 풍류의 대가였던 김창조(1865~1919)는 이전에 사용하던 풍류 가야금이 아닌 오늘날의 산조 가야금 모양을 사용하여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같이 가야금 산조 악기는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면서 만들어졌다.
산조 가야금은 풍류 가야금보다 줄이 가늘며 몸체의 폭이 좁고 길이도 짧다.
또 가야금의 끝부분도 양이두의 모양이 아니며 반듯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조 가야금은 빠른 선율의 연주에 편리하고 풍류가야금과는 다른 연주 주법으로 폭넓은 소리를 낸다. 산조 가야금은 기악 독주곡인 산조를 비롯해서 민요 반주, 시나위 반주, 병창, 창작곡의 연주 등에 널리 쓰인다.
[3] 개량 가야금
풍류 가야금과 산조 가야금 이외에 악기 몸체의 크기와 길이를 조절하여 음역을 달리한 저음․중음․고음 가야금은 가야금 중주의 연주를 위해 고안되었으며, 12줄인 기존 가야금의 줄 수를 늘려 음역을 넓힌 15현 가야금․17현 가야금․21현 가야금 또 여음을 길게 울리게 하기 위해서 명주실이 아닌 철줄을 얹어 무용 반주 등에 많이 쓰이는 철가야금 등 여러 종류의 가야금이 있어서, 가야금 음악 세계의 폭이 넓혀지고 있다.
2. 가야금의 구조와 명칭
① 산조 가야금의 앞판과 뒤판 : 앞판은 주로 오동나무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결이 연하여 나무 가운데 가장 잘 울리고 또한 독하여 벌레들이 잘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뒤판은 강하면서도 결이 연하고 선명하여 소리가 울리는 데 좋은 작용을 하는 밤나무를 사용한다.
② 좌단 : 가야금의 제일 오른쪽 머리 부분으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이 곳에 오른손의 옆면이 놓인다.
③ 현침 : 좌단을 따라 있는 약 1.5Cm 정도 높이의 둥근 대이며, 12개의 흠이 파여 있어서 가야금의 12줄이 이 흠을 지나 뒤판쪽의 돌괘에 각각 매어진다.
④ 안족 : 가야금의 줄을 받혀 주는 12개의 기둥으로서 가야금의 몸통 위에 놓인다. 안족을 위 아래(현침쪽 또는 부들쪽)로 움직여서 음을 높게 또는 낮게 한다.
기러기발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기러기발 또는 안족이라 부르며, 배나무 혹은 호도나무로 만든다.
⑤ 줄 : 줄은 명주실을 사용한다.
제일 굵은 줄(제1현)은 80가닥이고, 제일 가는줄(제12현)이 30가닥 정도이다.
⑥ 학슬 : 부들의 실고리 왼쪽 밑에 색사로 잠긴 부분으로, 학의 무릎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⑦ 부들 : 가야금 12줄을 고정시키기 위해 무명실로 꼬아만든 줄이다.
한쪽 끝은 고리 모양 으로 현침․안족을 거쳐 온 가야금 줄이 이 고리에 꿰어지며 다른 한 쪽은 줄로써 봉미의 구멍에 꿰어진다.
무들을 잡아 당기거나 늦추어서 줄의 세기를 조절하며, 부들의 색깔은 청색 또는 밤색을 사용한다.
⑧ 봉미 : 가야금의 제일 왼쪽 끝부분으로, 가야금의 몸통에 덧붙인 12개의 구멍이 뚫린 나무판이다.
이 구멍에 부들이 꿰어진다.
봉의 꼬리같다고 하여 봉미라 하며, 느티나무와 대추나무를 사용한다.
⑨ 돌괘 : 가야금의 현침 부분 앞쪽에서 뒤쪽으로 나온 줄을 고정시키는 괘이다.
오른쪽․왼쪽으로 돌려서 미세한 음정의 차이를 조절한다.
⑩ 울림구멍 : 가야금의 뒤판에 나 있는 구멍으로 공명통의 구실을 한다.
중앙에는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직사각형의 크기의 구멍과, 위․아래로는 우주를 상징하는 뜻으로 해와 달의 모양을 본뜬 구멍이 각기 있다.
3. 가야금의 연주자세
[1] 바닥(돗자리)에 앉아서 연주하는 자세
① 왼쪽 다리를 안으로, 오른쪽 다리는 밖으로 하고 왼쪽 무릎을 낮게, 오른쪽 무릎은 높임으로써 왼손 농현을 편하게 한다.
② 가야금 뒷면에 있는 돌괘 부분이 오른쪽 무릎 옆 밖의 면에 닿도록 하며, 왼쪽 무릎에 가야금의 몸체를 놓아 고정시키고, 봉미는 앞으로 조금 내어 약 20°가 되도록 비스듬하게 놓는다.
③ 오른손은 손바닥을 동그렇게 해서 좌단에 놓는데, 이 때 손옆(소지의 아래부분 : 글씨를 쓸 때 책상에 닿는 부분)이 저음에서 고음으로 혹은 고음에서 저음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항상 이 좌단에서 떼지 않도록 한다(연주에 따라 예외인 경우도 있다).
식지의 첫 마디금에 모지를 갖다 댄 후, 식지의 첫째 마디 중간 부분을 현침에서 2~3cm정도 떨어진 곳의 줄위에 닿도록 한다.
이 때 장지 와 무명지를 식지 의 아랫줄에 차례로 각각 살짝 대고, 소지는 좌단에 놓아둔다.
④ 왼손은 식지 와 장지를 가지런히 하여 안족에서 약 10cm 정도 아래에서 약 45°각도의 자세로 뜯고자 하는 줄을 따라 얹어 놓는다.
모지 는 식지의 둘째 마디에 대고, 무명지와 소지는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펴 준다.
[2]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자세
① 가야금을 고정시키기 위해 봉미쪽에 받침대(지상에서 20~30cm정도의 높이)로 받쳐준다.
② 오른쪽 발밑에 발받침을 하면 좋겠으나, 발받침이 없으면 오른쪽 허벅지가 왼쪽 허벅지 보다 약간 높은 자세를 취하도록 한다.
③ 손모양은 바닥(돗자리)에 앉아서 연주하는 자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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