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風水등/전통과옛날것

거문고

아치울잡초 2006. 12. 14. 13:13

 

거문고 우리나라 전통악기 중 가장 중요한 악기의 하나로 취급되어온 현악기이다.

 

거문고는 오동나무로 만든 울립통위에 6개의 줄이 얹혀져 있다.

 

이 6현 중 제2현, 3현, 4현까지는 16개의 괘에 얹혀져 있고 제1현과 5현, 6현은 가야금과 같이 기러기발 모양의 안족위에 얹혀져 있다.

 

역시 줄은 명주실로 꼬아 만든 줄을 쓰며 오른손의 식지와 장지사이에 끼워서 줄을 퉁기는 기구인 술대는 바닷가에서 나는 검은색의 해죽으로 만든다.

 

왼손으로 괘를 집고 오른손으로는 식지와 장지상이에 끼운 술대를 가지고 줄을 내려치거나 올려 뜯어서 소리낸다.

 

고구려의 왕산악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 거문고는 고구려 고분 무용총등의 벽화에도 보이고 있어 꽤 오래된 악기로 평가되고 있다.

 

거문고는 그 소리가 그윽하고 은은하여 예로부터 선비들이 애호하던 고상한 악기로 <영산회상>, <가곡> 등과 같은 정악은 물론 <산조>, <시나위> 등과 같은  민속음악에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유래]

 

〈삼국사기〉에 "거문고는 중국 진(晉)나라의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이 개조하여 만든 악기인데 이를 연주하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그래서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러나 이는 설화적 기원에 불과하다. 거문고는 신라의 삼현삼죽(三絃三竹)의 하나로 향악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조선시대 거문고는 궁중에서보다 민간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거문고는 일부 양반들과 중인계층에 수용되어 선비들의 필수품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들은 거문고를 연주함으로써 정신을 수양하고 다스리고자 했다.

 

이는 공자의 예악관(禮樂觀)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들을 흔히 금객(琴客)이라고 하는데 이들에 의해 많은 거문고악보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전하는 고악보의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이 즐겼던 음악은 가곡과 영산회상(靈山會相) 등인데, 악보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 우리나라 음악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특징]
안악3호분 벽화의 무악도(舞樂圖)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 거문고의 모양은 4개의 줄과 17개의 괘가 있고, 연주자는 꿇어앉아 거문고를 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주했다.

 

그러나 지금의 거문고는 2줄이 더해져 6줄로 바뀌었고 괘는 16개로 고정되었다.

 

또 울림통의 앞면은 오동나무로 둥글게 만들고, 옆면과 뒷면은 밤나무로 평평하게 만들어 앞면과 연결시켜 D형의 모양이 되게 하고, 뒷면에는 3개의 울림구멍이 있어, 공명된 음을 외부로 전달한다.

 

울림통에는 줄감개․줄베개․줄받침․줄걸이 등이 있어 줄과 울림통을 연결시키는 구실을 한다.

 

줄감개는 뒤편 위쪽에 있는데, 진괘라고 부른다.

 

이 진괘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음이 올라가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면 음이 낮아져 간단한 조율을 하는 데 사용한다.

 

앞면 아래쪽에 있는 고리가 달린 긴 끈은 줄걸이라 하는데, 거문고줄의 남는 부분과 부들[染尾]을 연결하는 데 쓴다.

 

부들은 거문고 줄의 전체적인 탄력을 조절할 때 쓰며, 줄과 울림통을 연결하고 남는 부들은 가지런히 꼬아서 거문고 아랫부분에 멋스럽게 장식한다.

 

줄베개는 담괘라고 부르는데 가야금의 현침에 해당한다. 담괘는 줄과 울림통 사이의 간격을 두기 위한 장치이다.

 

줄받침은 괘 또는 안족이라고 한다.

 

거문고의 6줄 가운데 3줄은 괘에 올려져 있고 3줄은 안족으로 받쳐진다.

 

거문고에는 16괘가 있는데 제1괘에서 제16괘로 갈수록 괘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며 괘 사이의 간격도 좁아진다.

 

괘는 기타의 지판과 같은 기능을 한다.

 

거문고 줄은 명주 실을 꼬아 만드는데, 각각 다른 이름이 있고 줄의 굵기도 다르다.

 

제1현은 문현(文絃), 제2현은 사용빈도가 가장 잦은 유현(遊絃), 제3현은 가장 굵은 대현(大絃), 제4현은 괘 위에 있는 괘상청(上淸), 제5현은 괘 아래 있는 괘하청(下淸), 제6현은 무현(武絃)이라 한다.

 

거문고는 술대를 사용하여 소리를 낸다.

 

술대는 대나무로 만들고 길이는 17㎝ 정도, 지름은 7㎜ 정도가 적당하다.

 

거문고 울림통 앞면 윗부분에는 좌단과 대모가 있다.

 

좌단은 술대를 쥔 오른손이 줄을 다루기 편하도록 손을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

 

대모는 술대로 줄을 내리칠 때 술대가 닿는 부분이 상하지 않도록 가죽을 댄 것이다.

 


 
[연주법과 조현법]

 


거문고의 대모가 붙은 한쪽 끝을 오른편 무릎 위에 얹고 왼편 무릎으로 악기의 뒤판을 고여 거문고를 모로 뉘어놓고, 술대를 오른손의 검지와 장지 사이에 끼우고 엄지로 버텨쥔다.

 

이때 왼손은 줄 위에 얹어 줄을 밀거나 흔들어 음을 장식한다.

 

왼손의 명지는 유현을, 장지는 대현을 괘 위에서 짚어 음을 낸다.

 

검지로는 장지로 짚었던 괘보다 하나 앞쪽 괘를 짚어 한 음 높은 음을 내고, 엄지로는 두세 개 앞쪽의 괘를 짚어 두세 음 높은 음을 낸다.

 

이와 같이 거문고의 연주에서 음의 높낮이는 왼손으로 조절한다.

 

유현과 대현의 왼손 명지․장지로 짚는 괘의 위치는 음악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거문고의 조현법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악학궤범 樂學軌範〉 이전의 거문고 연주법은 줄을 위에서 가볍게 눌러 짚는 경안법(輕按法)이었으나 1572년(선조 5) 〈금합자보 琴合字譜〉 이후로는 줄을 밀어 짚는 역안법(力按法)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역안법으로 바뀜에 따라 거문고의 농현․전성․퇴성이 가능하게 되어 표현력이 한층 풍부해졌다. 장사훈(張師勛)의〈거문고 조현법의 변천〉이라는 논문을 보면, 〈악학궤범〉을 비롯 10여 가지의 고악보를 조사하여 얻은, 조선 성종 이후부터의 조현법 변천과정을 알 수 있다.

 


〈금합자보〉의 조율법을 보면 평조는 〈악학궤범〉의 삼지, 우조는 〈악학궤범〉의 팔지와 같다.

 

다만 〈악학궤범〉과 다른 점이라면, 〈금합자보〉에서 평조의 궁인 대현 5괘와 우조의 궁인 유현 4괘의 궁이 밀어서 낸 소리라는 점이다.

 

〈양금신보 梁琴新譜〉․〈신작금보 新作琴譜〉․〈한금신보 韓琴新譜〉에는 대현 5괘가 궁이 되는 평조와 유현 4괘가 궁이 되는 우조의 2가지 조율법이 있다.

 

평조의 조율법은 〈금합자보〉와 같으나, 우조에 있어서 궁과 같은 음이던 괘하청을 궁보다 4도 낮은 임종으로 바꾸는 점이 다르다.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이후의 조율법은 현재와 같이 평조와 우조의 구분없이 문현은 대개 2괘 황종과 같고, 괘상청․괘하청․무현은 유현 2괘 및 대현 6괘 임종과 같다.

 

예전의 평조 조율법과 비슷하나 문현의 태주가 아니고 황종인 점이 다르다.

 

이와 같이 거문고의 조율법은 〈악학궤범〉의 조율법에서 3차례 변하여 현재는 조의 변동과 관계없이 하나의 조현법으로 통일되었다.
 

 

거문고와 가야금

 


거문고는 선계의 악기이나 가야금은 인간이 만든 악기이다.

 

전설에 거문고 연주 시 학이 날아왔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 그 까닭이다.

 

가야금 역시 선계의 파장을 받아 만든 악기이나 거문고의 부족한 고음을 연주하는 성격이 강하다.

 


거문고에는 호흡을 실을 수 있으나 가야금은 호흡을 싣기가 어렵다.
호흡을 실을 수 있으면 수련에 응용이 가하다.

 


어째서 그런가?
호흡을 실을 수 있는가 아닌가는 그 악기의 파장이 호흡의 파장과 일치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거문고는 그 파장을 호흡에 일치시키기가 편하므로 그것을 통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양방향적인 메신저 역할을 한다.
허나 가야금은 일방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상대방에게 연주자의 파장을 보내는 역할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