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 이듬해 2월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3월 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였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년),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인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을 받아 본 그는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어머니가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 주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入金剛 金炳淵(金笠)
書爲白髮劍斜陽 天地無窮一恨長 痛飮長安紅十斗 秋風蓑笠入金剛
(서위백발검사양 천지무궁일한장 통음장한홍십두 추풍사립입금강)
글읽다 백발이요 칼갈아 사양인데 천지는 무궁하나 한자락 한은깊어
장안의 붉은술을 기를써 다마시고 갈바람 삿갓쓰고 금강으로 가노라
愛酒歌 金笠
渴時一滴如甘露 醉後添盃无不知 酒不醉人人自醉 色不迷人人自迷
(갈시일적여감로 취후첨배무부지 주불취인인자취 색불미인인자미)
목마를 때 한방울은 단이슬과 같으나취한후에 술한잔은 없느니만 못하누나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스스로 취하며
계집이 사람을 홀리는게 아니라 제 스스로 미쳐서 날뛴다
* 몇해전 인사동 '풍류사랑'이라는 대포집에 갔더니
누군가 싸인펜으로 벽에 "酒不醉人人自醉 色不迷人人自迷"라고
써놓은 것을 보았는데 분위기와 어울려 보기에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難避花 金炳淵(金笠)
靑春抱妓千金芥 白日當樽萬事空 鴻飛遠天易隨水 첩過靑山難避花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홍비원천이수수 첩과청산난피화)
청춘에 기생을 품으니 천금이 초개같고 대낮에 술상을 대하니 만사가 소용없네
멀리나는 기러기는 물따라 날기 쉬운데 청산넘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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