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 허주(虛舟)와 민초의 삶

아치울잡초 2015. 6. 17. 06:33

 

 

 

허주(虛舟)와 민초의 삶   (莊子 外篇 山木中)

 

方舟而濟於河    有虛舟來觸舟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와서 그의 배에 부딪치면

雖有惼心之人不怒    

그가 아무리 성격이 나쁜 자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그러나 그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더욱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 저주를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가 빈 배라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그대 자신의 배를  그대가 비울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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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허주(빈배)에서 민초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빈배로 흘러가며 사는 일.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자유롭게 물 따라 흘러가며 살아가는 일.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지만 흐르는 물 따라 그저 흘러 가는 일,

인생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이지 어떤 목적이나 수단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

인류가 발전해 오면서 인류역사가 축적이 되면

장자가 말하는 민초들의 자유로운 삶도 점점 더 나아져야 할 탠데

오히려 세상은 그렇지 못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장구한 세월이 흘러

그 동안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엄청나게 축적되었다고는 하지만

요즘 세상도 마치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 못지않게 힘들기만 한 것을 보면

이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야 부국강병 논리가 끊임없이 강요되며

전쟁의 와중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었을테지만

그러나 전국시대가 아닌 평화시대 요즘세상의 대한민국 민초들도

빈배처럼 물 따라 흘러가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은 녹록치 않다.

 

'메르스‘라는 생면부지 신생바이러스 이름이 몇 번 들리는가 싶더니

손을 씻어라, 마스크를 써라, 병원에 가지마라, 시장에 가지마라 강요를 하더니만

아이들까지 학교가지 마라, 이젠 다시 등교해도 괜찮다. 마스크 써라, 열좀 재보자......

빈배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아 민초들의 삶은 날로 피곤해져 간다.

이런 형국임에도 민초들의 삶을 지켜줘야 할 위정자들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니

 

모든 정보를 가지고 계신 나리님들은 마스크를 써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말하여야할 때는 말하지 아니하고 말하여야 할 것은 또 침묵하는 사이

이것저것 눈치볼 것 없는 ‘메르스’는 자고나면 더더욱 창궐하는데

‘메르스’잡는 일은 뒷전이고

답답한 마음에 정작 무언가 해보겠다는 사람들을

때려잡을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한 모습은 볼성 사납고

과잉대응이니 과소대응이니 이전투구 양상이 마치 전국시대와 다를바 없고

그사이 불쌍한 민초들만 죽어 나간다.

 

설상가상 ‘유엔 WHO’가 진상조사를 나와서 우리에게 훈계를 하고

그동안 관광으로 찾아주던 외국인들의 발길도 하나둘씩 끊어지며 

외국 언론들도 우리나라 정보공개 수준이 아프리카 어느나라보다도 못하다고

조롱을 해대니 민초들의 저존심 구겨지고 피로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이 모두가 투표를 잘못한 민초들 당신들 책임이라 하면 또 할 말이 없어지지만

투표가 인생의 전부는 아닐 터 무슨 묘안이 없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러가야, 어떻게 투표해야, 아니면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민초들의 빈배는 자유롭게 강물 따라 흘러 또 흘러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