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 炳燭之明(병촉지명)

아치울잡초 2015. 8. 4. 16:10

炳燭之明(병촉지명)

촛불을 밝히는 밝음

 

 

 

요즈음은 아침 다섯시면 잠이 깬다.

한해 두해 나이가 더 할수록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이 빨라진다.

아침 식사 전 공짜로 주어지는 소중한 두 세 시간, 무엇을 할까?

뒷동산 뛰어 올라 운동기구 잡고 씨름을 할까,

아니면 가뿐 숨 내쉬며 열심히 뛰어볼까?

얼마전 새벽 뒷동산 올랐더니만

앞뒤로 연세 많으신 노인들의 어색한 몸놀림이 눈에 들어오며

그중에 섞인 내가 괜시리 서글퍼져 뒷동산 새벽행보는 접어두기로 했었다.

 

무엇을 할까?

사위가 고요하고 적막하며 신선한 아침, 무엇을 새로 시작할까?

이제까지 어떻게 살까? 라고 고민하기에 앞서

그냥 주어진 삶, 그저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아욌는데

여건이 허락지 않는다는 핑계를 스스로 만들며

하고 싶은 것도 지레 포기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새벽시간 남아돌아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허송하니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뭘 배우려고 마음먹지 못하며 희끗희끗해진 머리색깔을 의식하며

운신(運身)이며 운위(云謂)며 지레 주변을 살피게 되니 문제가 심각해 진것 같다.

이젠 나이 들었다고 이렇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아가야 하나?

 

아니다. 그러면 안되는 거다. 뭔가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제 갓 이순의 나이 지났는데 무엇이 문제랴?

체력도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며 부러워들 하고

지금도 테니스 라켓들고 강력하게 스트로크 날리면 주위에서 환호하는데

새벽에 조금 일찍 눈 떠진다고 나이 탓 운운하며 기죽을 일 없잖는가?

진정 강한 사람은 오히려 혼자 있을 때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체력은 좋으니 건강한 정신을 갖추면 되는 일이다.

 

우선 강의를 준비한다.

이백이며 백거이며 남명 조식이며 백운거사며 그동안 외워왔던 한시 50여수에

스토리만 더하면 훌륭한 인문학 강의가 될터이니

새벽에 남는 두시간 우선 강의 자료부터 만들어 보는 거다.

병촉지명 삶을 위하여 공부좀 하는 거다.

강의 자료는 준비하고 정작 강의는 못하게 되더라도

준비하는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강의하는 효과가 있을터이니

그것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진나라 임금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물었다.

내 나이 일흔에 공부를 하고 싶은데, 너무 저물지(늦지) 않은가 걱정이구나.”

그러자 사광이 대답하기를 왜 촛불을 밝히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하였다.

어찌 남의 신하가 되어서 그 임금을 놀릴 수 있는가?”

사광이 대답하기를

눈먼 신하가 어찌 감히 그 임금님을 놀릴리 있겠사옵니까?

신이 이런 말을 들었사오니

 

少而好學 如日出之陽 소이호학 여일출지양 이요

壯而好學 如日中之光 장이호학 여일중지광 이요

老而好學 如炳燭之明 노이호학 여병촉지명 이니

炳燭之明 孰與昧行乎 병촉지명 숙여매행호 리까

 

 

젊어서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아침 해가 떠오를 때의 밝은 빛과 같고

나이 들어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한낮 중천에 뜬 햇빛과 같으며

늙어서도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저녁어둠에 촛불을 밝히는 밝음과 같다

촛불을 밝히고 가는 것이 어찌 캄캄한 길을 가는 것과 같겠사옵니까."

라고 하였다. 평공이 말했다 좋은 이야기로구나

 

인생의 미묘한 그림자는 대낮의 눈부신 빛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저녁 무렵 등불로 비추어야 비로소 보인다.

실제로 인생론에 관한 명저의 대부분은 저자들이 만년에 쓴 것이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병촉지명은 아침 해보다 밝다 할 수 있다.

봄날에 피는 벚꽃도 아름답지만 가을날의 단풍도 아름답다.

비록 나이는 더해가지만 늙어감에 흔들리거나 마음상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리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길,

이것을 병촉지명의 삶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