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도전은 계속된다

아치울잡초 2017. 4. 19. 21:14

 

 

 

도전은 계속된다

 

집근처 문화원에 서예를 배우러 갔다.

젊을 때부터 논어, 맹자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서예에도 관심을 가졌었고 그동안 서예학원도 다니며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장맹용비(張猛龍碑)를 거쳐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 까지 진도가 나갔지만 내 자신이 내 글씨를 보아도 영 맘에 들지 않아 남들에게는 언감생심 디밀지 못하고 혼자만 취미로 즐겼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동안 관심을 가졌었고 비록 일천하지만 이리저리 얻어들은 전문지식이 쌓여 무엇을 썼는지,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는 너무도 잘 알게 되어 남들의 좋은 작품 부러워하며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는 늘 자책을 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기초부터 다시 한 번 시작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나이드니 새벽에 일찍 깨어나는 습관이 생기고 책을 읽자니 눈이 아프고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다시 화선지를 펴고 서예학습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기초부터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생소한 동네문화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은 문화원에 가서 체본을 받고 새벽시간 서너번 서예학습을 하려고 계획을 한 것이었다.

 

문화원 서예학습실 문을 여니 십여 명이 붓글씨를 쓰고 있었고 분위기가 조용했는데 앞쪽으로 걸어가서 말을 걸었다.

선생님 어디계십니까? 서예 배우러 왔습니다.’

곧 바로 총무가 다가오더니 선생님을 소개해 준다.

나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조금 연상으로 보이는 여자선생님이셨다.

마주 앉더니 선생님의 질문이 시작된다.

 

전에 얼마니 배우셨어요, 어떤 법첩(法帖)으로 하셨나요?’

아주 초짜입니다. 기초부터 가르쳐주시고 운필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니, 초짜가 아니신 거 같은데 어떤 법첩 쓰셨는지......’

아니 초짜라는데 자꾸 법첩 말씀하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이어지는 선생님 설명을 들어보니

서예를 배우러 문을 열고 입장할 때 두 가지 유형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정말 처음 배우러 오는 사람은 좌우를 살피며 두리번거리고 조심스럽게 입장을 하는 반면에 그나마 전에 경험이 있어서 조금 쓸 줄 아는 사람은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와 선생님을 찾는 법인데 내가 입장하는 모습이 후자에 속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 조금 경험이 있을 뿐이고 이번기회에 기초부터 배우고 싶으며 전서(篆書)를 배우고 싶다 했더니 석고문(石鼓文)’을 지정해주고 체본을 써주셨다.

 

처음 배우는 입장으로 자세를 낮추니 여러 가지로 편하고 너무 좋다.

글자모양 신경 쓰지 마라’, ‘반복해서 여러 번 쓰다보면 모양은 생긴다’, ‘중봉(中鋒)’에만 신경 쓰고 꺾으려고 하면 멈추었다가 붓 정리하고 가라’. 등등

가르침이 자상하고 한 획 또 한 획 정성을 다해서 써보니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난다.

 

그동안 나름대로 오랜 세월동안 갈고 닦은 실력은 무색해졌고 남들은 옆에서 집자성(集字聖)’이니 난정서(蘭亭序)’니 멋들어지게 휘갈겨대지만 그 방면에 아픈 과거를 가진 나는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가끔 먼저 등록한 선배들이 초짜에게 자세를 이리해라 저리해라, 붓을 내려잡아라 올려잡아라 하고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주다가 이미 써 놓은 글씨를보고는 초짜 맞나요?’ 라며 묻기도 하는데 고개만 끄덕여 대답한다.

그동안 붓글씨를 겉치레만 보아왔고 건성으로 그려왔다는 생각이 들고 서예의 참맛을 그나마 이제야 제대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라 여겨진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하지만 베움에 있어서만큼은 낮출수록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낮추니까 편안하고 편안하니까 새로운 것이 보이고 새로운 것을 보니 즐겁기만 하다.

가능하면 느리게 힘주어 획()을 긋고 진도(進度)는 가장 느리지만 실()하게 나아가려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