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폭포같은 마음으로 호수처럼 살다가 바다로 갔습니다.

아치울잡초 2022. 7. 4. 16:40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요즘 통 입맛이 없다,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가끔 아이들이 와서 식사를 사주고 가는데 아이들에게 '맛있게 잘먹었다' 라고 말하지만

립서비스이지 사실은 맛을 잘 모른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나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시며 해주신 말씀이다.

 

"그리고 음식 맛을 모르게 되니까 인생의 맛도 알수가 없게 되는거 같다.

살면서 크게 좋은 일도 없고 슬픈 일도 없어지고 감정이 점점 메말라가는거 같다.

지금 죽는다해도 그리 한스러울 일도 없고  살아 있어도 그리 신이 날 일도 없으니  사나 죽으나 그저 그거 같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시며 방금 립서비스라고 이야기 들은 나에게도 또 그렇게 "식사 맛있게 잘 먹었다" 라고 하신다.

아버지 말씀이 단지 나에 대한 '립서비스인가 아닌가' 혼란스럽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아버지 이세상 남은 날이 이제 그리 많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97세 까지 비교적 건강하셨던 아버지에게 올해 2월이 되며 갑자기 치매증상이 찾아왔다.

새벽에 집을 뛰쳐나가 거리를 헤메고 다니시고 지난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기억하지 못하셨다.

지금까지는 혼자 기거하시면서 며칠에 한번정도 찾아뵈면 되었는데

이젠 상황이 달라져 곁에 보호자가 상시 붙어 있어야 했다.

나는 누님과 상의하여 결국은 인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하였다.

그렇게 요양원에서 3개월을 계시다가 바로 그날,

아침 5시 자식들이 보고싶다시더니 7시 아침밥상 받으시고  8시에 쓰러지셔서 홀연히 가셨다.

임인년 유월 스무 아흐렛날

 

다섯살되시던 1930년 일본에 건너가시고 스무살되는 815해방때 까지 일본에서 사셨다.

일본에서 소학교,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시고 전기기술자로 잠시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징집되어 일본군에 복무하며

'가미가제특공대' 비행기 정비업무를 하셨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가미가제특공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주시곤 하셨다.)

해방 다음해가 되어서야 조국에 오셔서 5년 여 생활하시다가 육이오전쟁이 터져서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군으로 참전, 용케도 살아 남으셨고 육이오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가 되셨다.

 

지금이야 오히려 우리가 앞서지만 아버지적 일본은 우리보다 2~30년은 앞서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나온 정도면 그 당시 우리 대학졸업과 비교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고들 하였다.

 

아버지는 사람의 가장 위대한 덕목은 남을 위한 배려심이라 가르치시고 실천하셨다.

배려심이 넘치셔서 남들은 환호했지만 같이 사는 어머니는 항상 뒷전이라 힘들어하셨다.

배려심이 유달리 강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자식인데도 그자식 또 배려하시느라 '요양원행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시고

받아들이셨다.

입으로는 수락하셨고 눈으로는 섭섭하다는 말씀을 하고 계셨지만 그러나 '요양원행'외에는  별무신통지사라

어쩔 수가 없었다.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니 다시한번 마음이 아파온다.

 

국립괴산호국원'에서도 비교적 높은곳에 안장되셔서 호국원을 내려다 보시게 되었다.

사방에 바라다 보이는 산세가 훌륭하여 부는 바람을 가두고 따사로운 햇빛을 품고 있으며 초록 풍광이 수려하여

바라다 보는 안구가 시원하였다.

계절이 바뀌면 초록풍광은 울긋불긋 오색단풍으로 화려함을 뽐낼것이고 곧이어 하얀 설원이 펼쳐지며 순백의 청결함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압도할 것이다.

 

누구보다 바쁘게 사셨던 내아버지

이제야 정말 모든걸 내려 놓으시고 풍광 좋은 곳에서 바람과 햇빛 마음껏 누리시고

함께 조국을 지켜낸 동지들과 평안하게 지내십시요, 

조만간 아버지께서 그리도 사랑하셨던 어머니도 모셔오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분 평안하소서,  아주 영원토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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