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버스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누군가의 사연을 낭독한다.
요즘 흔 하디 흔한 아내사랑 타령인데 사연인즉 그저 그렇다.
아내가 처가에서 4남매 중 세 번째인데 자신도 역시 셋째여서 같은 처지라 아내가 사랑스럽고
또 어쪄구 저쩌구 하는데 이래서 사랑스럽고 저래서 사랑스럽고~
사연이라고 읽어주는데 둔감한 내게는 전혀 사랑스런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 사람 듣는 방송인데 좀 보태서라도 사랑스런 느낌이 나게 할 수는 없었을까 ?
이제는 우리사회가 원하던 대로 서구화되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무엇보다 존중되고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도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사랑 표현하는 일이 당연시 되었다지만
좁은 공간 버스 속에서 이상스레 귀 막고 있을 수도 없어 참 민망하단 생각이 들었었다.
사무실에 당도하여 인터넷을 여니 원숙한 연기자의 사연이 나온다.
지난 시절 연극배우로서 오랫동안 활약하다가 영화배우 역할로 활동영역을 넓히자니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연극과 달리 조명이 뻔득이고 감독이 소리 질러대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왔다갔다 어지러워 도무지 집중하고 연기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쳐진 어깨를 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나는 아무래도 영화배우는 못하겠어!’
‘도무지 심란하고 어지러워서 집중이 안 되더라고,’
‘나는 그냥 연극이나 하고 말아야겠어,’
낙담하며 이야기하는 남편을 아내가 물끄러미 바라다보더니
‘여보, 지금 성공한 당신 선배들도 다 그런 과정 겪어냈을 거야,
조금만 참고 열심히 집중하다보면 당신도 잘 할 수 있을 거구!’
든든한 내편, 아내 덕분에 마침내 이겨내고 성공했다고 한다.
나란히 출연했던 다른 배우가 웃자고 한마디 한다.
‘형님, 그렇게 힘이 되어준 아내는 신경 쓰지도 않고
일 끝나면 동료들과 주막집부터 들르는 이유는 뭡니까?
형수님 사랑합니까?‘
장난스런 후배의 추임새에 좌중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사랑한다’라는 말, 그 표현도 중요하지만
정말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공감을 불러온다.
서양에서는 표현해야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동양의 노자는 도덕경에서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말한다.
大直若屈 대직약굴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하며
大巧若拙 대교약졸 큰 솜씨는 마치 서툰 듯하고
大辯若訥 대변약눌 큰 말솜씨는 마치 어눌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