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외손자 작명

아치울잡초 2017. 10. 11. 16:51

 

 

스물아홉에 장가를 가서 서른에 첫아들을 낳았다.

그 당시 도덕경에 빠져 있을때라 ()’에 관심이 집중될 때였고

도덕경 제1장 시작부분을 외우고 다녔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 명천지지시 유 명만물지모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요,

이름 지어질 수 있는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기타등등

 

아들 이름 가운데 돌림자가 바를정()자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름을 정도(正道)라고 지었다.

아무 망서림 없이.

손자 작명 소식을 전해 들으신 아버님이 크게 섭섭해 하셨는데 이유인즉

내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것이고

이번엔 당연히 아버님이 손자이름 지으실 차례라는 것이었다.

몇 해지나 딸을 낳았고 이번에는 아버님께 손녀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신애(信愛)’라고 지어 주셨는데

역시 내 아버님께서도 나와 비슷한 작명취향을 가지셨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정도가 자라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아 왔었다.

가훈을 써 줄테니 벼루에 먹을 갈라 시켰더니 먹을 갈았는데

본인 숙제라 안할 수도 없고 어린녀석 낑낑대며 씨름하기에

적당히 고생시키고 내가 마무리를 했다.

화선지를 펴고 서예실력을 총동원하여

한자로 정도(正道)’라고 써서 우리집 가훈이다라고 내밀었다.

세상천지 한자라고는 자기 이름자 밖에 모르는 녀석이

가훈이라고 제이름자를 적어 놓은 것을 보고는 즉시 반발했다.

아빠 이게 무슨 가훈이야? 내 이름이잖아!’

나는 아들녀석에게 가훈이 이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란걸 곧 바로 깨닫고 꽁지를 내렸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가훈을 써주겠노라고 하고

한자로 정도신애(正道信愛)’라고 썼는데 쓰는 순서가

오른쪽 가로에서 왼쪽으로 전개되어 왼쪽 세로에서 줄 바꿔 읽는일에 익숙한 아들녀석이

잠시 헷갈려 하는 동안 그걸로 끝을 냈었다.

아들녀석 좀 찜찜한 마음으로 선생님에게 숙제를 제출했더니

선생님이 여러 가지를 물어 보시더란다.

아빠가 직접 써주셨니? 정말 잘 쓰셨다.’

아빠는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시니?’

아빠 연세는 몇이시니?’ 등등

어린 녀석이지만 선생님께서 아빠를 칭찬하신다는 것을 알았었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저녁이면 술 취해 들어온다고 엄마에게 잔소리나 듣는

별 볼일 없는 그런 아빠를

누구보다 훌륭하신 담임선생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더더구나 칭찬까지 하시다니......

그때부터 정도녀석은 나를 달리 보아주는 것 같았다.

불러 앉혀 놓고 굳이 훈계하지 않아도 나를 의식하며 정도(正道)로 살아주었고

그 시절 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아들녀석은 지금까지도 나를 약간은 수준있는 아빠라고 여겨주는 것 같다.

 

며칠전 출가한 딸이 아들을 낳았다. 사랑스런 내 손자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사위녀석, 제 아들 이름 지을 생각 아예 접고

외할아버지인 날더러 외손자 이름 지어 달란다.

손자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줘야 된다나?

사내이름이 좀 강건하라고 박무혁(朴茂赫) 무성할무 빛날혁이라 지어보냈다.

사내가 나중에 자라서 국정원장이나 경찰청장이라도 하려면

국정원장 박무혁’, ‘00 경찰서장 박무혁어울린다 싶고

사내 이름이 좀 강해 보여야 큰일을 할 것 같아 그리 지어 보냈더니 퇴자를 논다.

그리 강한건 옛날이름이고 요즘 트랜드는 사내라도 좀 부드러워야한다나?

그리고 추가 주문도 많다.

오행을 맞추고 이름자에 피하는 글자는 가려서 빼되 부르기 좋고 뜻이 좋은 한자로 지어 달란다.

성이 박이니 오행으로 수()

금생수(金生水) 라했으니 이름 첫자는 금().

,,중에서 ()

또 토생금(土生金)이라 했으니 이름 끝자는 토(),

,중에서

박지후(朴祉厚), 복지, 두터울후 복이 많아라

박서호(朴瑞浩) 상서로울서, 넓을호 상서로움이 넘쳐라

이름 두 가지 지어주고 택하라했다

외할아버지는 둘 중에 그래도 지후가 더 좋다고 사족도 붙였다.

이번에는 조용한걸 보니 합격인가 보다.

외손자 이름지어주며 바라는게 뭐 있겠는가?

그저 손자녀석 자라서 외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알아주면 그걸로 족한일이 아니겠는가?

작명소에 가면 20만원이라는데 돈 벌었다.

번거로웠지만 보람있었던 일, 외손자 작명(作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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