虛作談論/하루 또하루 147

인생을 관조하는

밝은 빛은 世上을 환하게 하여 어둠에 가려 볼 수 없던 事物을 비로소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너무나 빛이 밝은 대낮에는 그 밝은 빛이 반사되어 事物을 정확하게 볼 수 없게 한다. 오히려 빛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저녁녘이 되어야 事物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의 얼굴모습을 사진에 담아낼 때 苦惱에 찬 표정이라던가 노인의 깊게 패인 주름의 모습 등은 칼라사진보다 오히려 黑白사진이 훨씬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도 이 같은 이치다. 그래서 그 옛날 맞선자리도 희미한 불빛 도라지위스키(?) 찻집에서 서로가 그윽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것이었다. 우리 人生도 마찬가지, 환하게 밝았던 젊은 날에는 세상만사 올바로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딪치고 깨지며 또 아물어가며 그런 격정의 세월을 살아왔었다. 그러나 이제 황혼..

사랑한다라는 말

아침나절 버스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누군가의 사연을 낭독한다. 요즘 흔 하디 흔한 아내사랑 타령인데 사연인즉 그저 그렇다. 아내가 처가에서 4남매 중 세 번째인데 자신도 역시 셋째여서 같은 처지라 아내가 사랑스럽고 또 어쪄구 저쩌구 하는데 이래서 사랑스럽고 저래서 사랑스럽고~ 사연이라고 읽어주는데 둔감한 내게는 전혀 사랑스런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여러 사람 듣는 방송인데 좀 보태서라도 사랑스런 느낌이 나게 할 수는 없었을까 ? 이제는 우리사회가 원하던 대로 서구화되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무엇보다 존중되고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도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사랑 표현하는 일이 당연시 되었다지만 좁은 공간 버스 속에서 이상스레 귀 막고 있을 수도 없어 참 민망하단 생각이 들었었다. 사무실에 당도..

양갱이수미(羊羹雖美)라도

정유년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자(朱子)께서 ‘일월서의 주야불사 세불아연(日月逝矣 晝夜不捨 歲不我延)’ ‘세월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고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한해두해 나이를 먹어가니 그 말씀이 더욱 실감이 난다. 이맘때쯤이면 지난 한해를 사자성어로 규정짓는데 올 한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한다. ‘그릇된 것을 깨버리고 바른 것을 세운다’는 뜻이다. 탄핵과 정권교체 정국을 염두에 두고 정해진 것이라 하는데 오늘의 현정(顯正)이 내일 그리고 다음날도 현정(顯正)으로 이어가는지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지난 해 연말에는 돌아가는 정국을 보며 ‘견지망월(見指望月)’이라는 말을 했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외손자 작명

스물아홉에 장가를 가서 서른에 첫아들을 낳았다. 그 당시 ‘도덕경’에 빠져 있을때라 ‘도(道)’에 관심이 집중될 때였고 도덕경 제1장 시작부분을 외우고 다녔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 명천지지시 유 명만물지모’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요, 이름 지어질 수 있는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기타등등 아들 이름 가운데 돌림자가 바를정(正)자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름을 ‘정도(正道)라고 지었다. 아무 망서림 없이. 손자 작명 소식을 전해 들으신 아버님이 크게 섭섭해 하셨는데 이유인즉 내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것이고 이번엔 당연히 아버님이 손자이름 지으실 차례라는 것이었다. 몇 해지나..

그렇게 떠들며 마시는 막걸리 맛도

공직생활을 핲께 했던 동료들이 모임을 결성해서 만남을 지속한지 어언 40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모임이 그리 오래 지속된 것은 나름의 속내가 있었다 회비를 적립하고 그 돈으로 주식을 샀는데 그동안 장기보유는 화려한 미래를 보장한다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몇이 병원 신세를 지고 나더니 이제는 장기보유가 뭐 그리 대단한 미래보장을 하겠느냐고, 우리 미래가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느냐고 슬픈 이유를 대가며 차라리 지금 환금하여 단체로 해외여행이나 다녀오자는 진보파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부 보수파는 그래도 우리모임을 이토록 오래 지속시켜준 힘이 주식이라는 공동자산의 보유였는데 그걸 팔아치우면 우리모임은 필시 흐지부지 깨어지고 말 것이다 라며 처분에 반대하여 언제부턴가 모일 때..

도전은 계속된다

도전은 계속된다 집근처 문화원에 서예를 배우러 갔다. 젊을 때부터 논어, 맹자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서예에도 관심을 가졌었고 그동안 서예학원도 다니며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장맹용비(張猛龍碑)를 거쳐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 까지 진도가 나갔지만 내 자신이 내 글씨를 보아도 영 맘에 들지 않아 남들에게는 언감생심 디밀지 못하고 혼자만 취미로 즐겼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동안 관심을 가졌었고 비록 일천하지만 이리저리 얻어들은 전문지식이 쌓여 무엇을 썼는지,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는 너무도 잘 알게 되어 남들의 좋은 작품 부러워하며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는 늘 자책을 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기초부터 다시 한 번 시작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나이드니 새벽에 일찍 깨어나는 습관이 생기고 ..

정유년 사월 산음휴양림 봄나들이

정유년 사월 산음휴양림 봄나들이 문대16기 봄나들이 행사 강동문화원 앞에서 모여 승용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양평 산음휴양림으로 신나게 달려가며 봄나들이가 시작되었다. 존경하는 우리 회장님 언제나 하시던 대로 이번에도 진수성찬 한보따리 해오셨다. 9명 나들이에 족히 20인분은 넘을 것 같이 풍성하게 준비해 오셨는데 아마 전날 밤은 꼴까닥 세우시지나 않았나 싶었다. 휴양림에 도착하여 우선 산행을 시작했다. 야트막한 산에 목책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오솔길을 따라가기도 했는데 폐부에 깊숙이 전해지는 산바람에는 봄내음이 한 가득 묻어 있었다. 군데군데 진달래도 감상하고 삼삼오오 인증 샷을 찍어대기도 하며 때로는 숨을 죽여 가며 바람소리 벌레소리도 듣고 꽃 이름 나무이름 설명도 열심히 들었는데 우리의 정선출신 교..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 맹자의 말씀이다. 일정한 생업(항산)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항심)이 없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맹자(孟子)는 고향 추(鄒)에 돌아와 만년을 보냈는데, 등(滕)나라의 문공(文公)이 맹자를 국정의 고문으로 초빙하여 나라 살림을 물었다. 「등문공이 국정을 묻자 맹자가 말했다. “백성의 일은 늦출 수 없는 것들이니‘낮에 띠를 하고, 저녁에 새끼를 꼬고, 빨리 지붕을 이어라. 그렇게 하고 나서 비로소 온갖 곡식을 뿌려라.’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사는 방도는 일정한 생업이 있으면 일정한 마음이 있고,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이 없습니다. 「일정한 생업이 없는데도 일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한 일입니다..